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이민자 단속으로 미국 외식업계의 인력난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음식점 등 이민자들이 주로 근무하는 장소를 급습하면서, 이민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8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미레스토랑협회(NRA)를 인용해 미국 외식업 종사자의 5분의 1 이상이 이민자라고 보도했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약 100만 명의 서류 불충분 이민자가 고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식점 운영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인력 부족에 시달렸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메릴랜드주에서 5개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토니 포먼은 “이민당국이 공개적으로 이민자 단속을 시행한 이후 일부 직원들이 출근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ICE는 강도 높은 이민자 단속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일에는 ICE 요원들은 로스앤젤레스(LA)의 의류 도매시장과 대형 생활용품 매장 홈디포를 급습해 불법 이민자 44명을 체포했다. 두 곳 모두 평소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었다. ICE는 이튿날에도 패러마운트와 콤프턴 등에서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체포했다.
외식업계도 ICE 단속의 대상이 됐다. FT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전역의 음식점들에는 직원들의 취업 자격을 확인하는 이민 당국 직원들의 방문이 빈번해졌다. 지난 5월에만 워싱턴 지역의 100여 개 음식점이 ICE 단속을 받았다.
더구나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19일 트럼프 정부가 미국 내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임시보호지위(TPS)를 취소할 수 있다고 결정하면서,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이민자를 고용한 음식점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약 35만 명의 베네수엘라 국민이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근로할 수 있는 권리를 잃고,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
FT에 따르면 2021년 TPS를 받은 베네수엘라인의 약 20%가 외식업에 종사 중이다. 텍사스주에서 레스토랑 체인을 대상으로 자문을 하는 이민 전문 변호사 제이콥 몬티는 “많은 고객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지위 취소로 기존에 취업 허가를 받았던 직원들을 대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반(反) 이민자 정책이 계속 나오면서 앞으로 상황은 더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이란을 비롯한 12개국 국민의 자국 입국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 등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도 부분적으로 제한됐다. 사실상 미국 외식업을 지탱해 온 이민자들의 신규 유입이 어려워진 것이다.
볼티모어의 베네수엘라 음식점 ‘알마 코시나 라티나’를 운영하는 이레나 스타인은 “베네수엘라 사람 없는 베네수엘라 레스토랑은 운영이 불가능하다”면서 “만약 이민자를 고용할 수 없다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인은 2015년부터 과학, 예술, 비즈니스 등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O-1 비자를 통해 셰프 10명을 채용해왔다.
이민자 단속으로 외식업 전체의 전망도 좋지 않다. 글로벌 신용평가 기관 피치는 지난달 미국 외식업계 전망을 ‘중립’에서 ‘악화’로 하향 조정했다. 외식업체들은 이민 단속과 고율 관세, 인건비 상승 등으로 가격 인상 압박을 받고 있지만,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에게 추가 비용을 전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