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미국 브로드웨이 최고 권위 시상식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6개 부문을 석권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8일(현지시각)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어워즈에서 뮤지컬 작품상(Best Musical), 극본상(Best Book of a Musical), 음악상(Best Original Score), 연출상(Best Direction of a Musical), 남우주연상(Best Actor in a Musical), 무대디자인상(Best Scenic Design of a Musical) 등 총 6관왕을 달성했다. 이번 시상식 최다 수상작이다.
토니상은 1947년 시작된 미국 연극·뮤지컬계 최고 권위 시상식이다. 영화계 아카데미상, 방송계 에미상, 음악계 그래미상과 함께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4대 주요 시상식으로 꼽힌다. 수상자는 현지 공연·언론 전문가들이 투표로 결정한다.
한국 창작뮤지컬이 토니상 뮤지컬 극본상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아가 한국에서 탄생한 창작뮤지컬이 토니상 최고상에 해당하는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 사례다.
극작가 박천휴와 미국 작곡가 윌 애러슨이 공동 수상한 극본상과 음악상은 한국인이 토니상을 수상한 첫 사례가 됐다.
박천휴 극작가는 현지 매체 플레이빌에 “오늘 하루 종일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꿈꾸던 것보다 훨씬 큰일이다. 우리를 완전히 받아들여 준 뮤지컬 업계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연출상을 수상한 마이클 아든은 토니상 수상 경력이 있는 베테랑 연출가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대런 크리스는 에미상·골든글로브상 수상자로 앞서 유명 뮤지컬 ‘글리’ 시리즈에 출연했다. 무대디자인상은 데인 래프리와 조지 리브가 공동 수상했다.
이 작품은 21세기 후반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에게 버려진 구형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예상치 못한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박천휴 극작가는 어느 날 카페에 앉아서 영국 싱어송라이터 데이먼 알반이 부른 ‘에브리데이 로보츠(Everyday Robots)’라는 곡을 듣다 영감을 얻었다.
미국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독창적인 이야기 전개 기법과 감정적으로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극찬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매출 100만 달러를 돌파했고, 좌석 점유율 99.52%를 기록했다.
토니상에 앞서 열린 다른 시상식에서도 어쩌면 해피엔딩은 유독 강세를 보였다.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에서 6개 부문, 아우터 크리틱스 서클 어워즈에서 4개 부문, 드라마 리그 어워즈 2개 부문을 휩쓸었다.
USA 투데이는 “수년간 뉴욕 브로드웨이를 강타한 가장 시각적으로 놀라운 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번 수상은 한국 창작뮤지컬이 언어와 문화라는 장애물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 작품성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한국 뮤지컬세계 진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작품이 상을 받기 까진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4년 우란문화재단 지원으로 첫 발을 디뎠다. 2016년 서울 초연 이후부터는 300~400석 규모 극장에서 다섯 시즌 동안 사랑을 받았다.
이후 2020년에 들어서야 미국 애틀랜타 얼라이언스 시어터에서 영어권 첫 공연을 가졌다.
올해 10월에는 창작 10주년을 기념해 한국어 오리지널 버전을 서울에서 재공연할 예정이다. 토니상 수상으로 세계적인 인지도가 높아진 만큼 아시아 각국으로 추가 진출도 기대된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이미 내년 1월 17일까지 연장됐다. 보그는 “내년 말부터는 미국 볼티모어 히포드롬 시어터를 시작으로 미 전역 투어가 예정돼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