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첨단 기술을 놓고 패권 경쟁을 펼치면서 순수 학문을 교류하는 대학가마저 첩보전에 얼룩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각) 미국 법무부가 전날 미시간대학교 미생물 상호작용 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국인 유안칭지안(33)과 중국 저장대학 연구원 리우준용(34)을 독성 곰팡이균 밀수와 공모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연인 사이인 두 사람은 작년 7월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독성 곰팡이균 샘플을 가방에 숨겨 미국으로 반입하려다 적발됐다.
캐시 파텔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중국 공산당이 미국 기관에 요원과 연구원을 침투시키고, 식량 안보를 표적 삼아 24시간 내내 활동하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직격했다.
이들이 들여오려 한 푸자리움 그라미네아룸(Fusarium graminearum)이라는 곰팡이는 단순한 곰팡이가 아니다. 미 당국은 이 곰팡이를 잠재적 농업 테러 무기로 분류한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FBI 요원 에드워드 니에는 법원에서 “푸자리움 그라미네아룸이 생성하는 독소는 인체에 유입될 경우 극심한 구토와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진술했다.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역시 이 곰팡이를 “밀, 보리, 옥수수, 귀리, 심지어 쌀과 같은 주요 곡물에 치명적인 붉은곰팡이병 또는 이삭마름병(head blight)을 일으킨다”며 “감염된 작물은 상품 가치를 잃고, 심할 경우 수확량 급감으로 이어져 연간 수십억 달러가 넘는 경제적 손실을 야기한다”고 전했다.
폭스뉴스 보도에 따르면 유안칭지안과 리우준용은 공항 세관에서 “대학 실험실에서 다양한 균주를 복제·연구하기 위해 샘플을 숨겨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시간대 측은 ‘해당 곰팡이균에 대한 어떠한 반입이나 연구 허가도 내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수사 중 휴대전화에서 찾은 파일에서 중국 소속 대학에 제출할 연간 자기 연구 평가서와 ‘중국공산당 원칙을 따르겠다’고 서명한 충성 서약문을 찾아냈다고 폭스뉴스는 전했다.
미국 공영방송 라디오 프리 아시아(RFA)는 “중국 정부 장학금 위원회(CSC)는 미국 대학 중국인 학생 가운데 15%에게 자금을 지원한다”며 “중국 정부 지원 장학금을 받는 중국 유학생 수만 명은 출국 전 정기적인 상황 보고서를 제출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미국 내에서 중국인 학생 혹은 연구원과 연계한 스파이 사건은 2020년대 들어 더 노골적이고 대담하게 벌어지고 있다.
2019년 하버드 의대 연구원 자오송정은 암 연구 관련 생물학 시료 21점을 양말에 숨겨 중국으로 밀반출하려다 보스턴 공항에서 붙잡혔다.
이듬해 2020년에는 중국 톈진대 교수였던 하오장이 미국 반도체 회사 아바고와 스카이웍스로부터 핵심 기술을 훔치려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또 2021년 중국 국가안전부(MSS) 소속 정보요원 쉬옌준은 제너럴일렉트릭(GE) 항공 등 미국 주요 항공우주 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려다 벨기에에서 체포됐다.
최근에는 실리콘 밸리의 요람 스탠포드대에서 가명을 사용한 중국 정보요원이 민감한 연구를 수행하는 여학생들에게 정보 탈취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접근하려다 발각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독성 곰팡이 밀반입 사건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 공산당과 연계됐거나, 미국 핵심 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중국 유학생과 연구원들 비자를 대거 취소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일어난 점에 주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시절이었던 2018년 미국 내 중국 스파이 색출 및 기술 유출 방지를 목표로 한 차이나 이니셔티브(China Initiative) 프로그램을 선보인 전례가 있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28일 “중국 공산당과 연계된 인물들, 미국 안보에 민감한 분야를 전공하는 유학생들을 포함해 중국 본토와 홍콩 출신 유학생 비자 심사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 내 중국 유학생 수는 약 28만명 수준이다. 중국은 인도에 이어 미국에 두 번째로 많은 유학생을 보낸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보통 미국인보다 높은 등록금을 납부한다. 대학은 이 수익을 미국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 재원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이 무역 분쟁이나 기술 패권을 넘어, 국가 안보와 국민 일상을 직접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미시간대는 4일 성명에서 “국가 안보를 위협하거나 대학의 중요한 공적 사명을 훼손하려는 모든 행위를 강력히 비난한다”며 “기소된 이들과 관련해 중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자금 지원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 외교부 대변인 린젠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중국 정부는 항상 해외 중국 국민에게 현지 법률과 규정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