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중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은 가운데, 주택가에서 운영되는 무허가 술집이 급증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명품 업계에서 시작된 소비 부진이 술 등 일반 소비재 시장으로까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FT는 베이징 올림픽 공원 인근 아파트에서 운영 중인 한 무허가 술집을 소개하며, “이 술집은 내수 경기 침체로 지출에 민감해진 중국 소비자들이 더 비싼 기존 술집을 외면한 이후 베이징 전역에 생겨난 수십 곳의 무허가 술집 중 하나”라고 전했다.
주택에서 운영되는 무허가 술집들은 주류 라이선스 비용을 내지 않아 기존 술집 대비 운영비가 낮다고 FT는 설명했다. 앞서 소개된 무허가 술집은 특이한 종류의 칵테일을 베이징의 기존 술집 대비 절반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베이징에는 한때 중국 경제 호황을 반영하듯 고급 레스토랑과 술집이 즐비했다. 그러나 부동산, 정보통신(IT),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까지 더해지면서 해당 산업 종사자들의 경제 상황이 악화됐고, 이들을 주 고객층으로 하는 고급 레스토랑과 술집은 큰 타격을 받았다.
실제 베이징시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요식업계의 이익은 전년 대비 81% 감소했다. 올해 1분기에는 5200만 위안(약 9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4억5400만 위안(868억원) 적자보다 적자 폭이 줄어든 것이지만, 여전히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요식업 전체 매출도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였다.
중국 운남 지역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비스트로의 대표 왕 씨는 “우리 주 고객층은 부동산, 금융, 영화, 광고, 미디어 관련 업계였다”면서 “이들은 (소득 감소로) 지출을 줄이거나 아예 방문을 끊었고, 다른 대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결국 매출로 고정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업체들이 속출하면서 무허가 술집까지 생겨났다. 이들 업체는 고정 비용이 낮아 ‘저가 판매’ 방식을 고수할 수 있어, 주머니가 얇아진 손님들을 유인하기가 쉬운 편이다.
베이징 북동부 IT 기업 밀집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무허가 술집을 운영하는 도로시는 “사람들은 파티와 사교를 원하지만, 나이트클럽은 너무 비싸다”며, 주로 인근 회사에 다니는 20대가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 술집은 인당 199위안(약 3만8000원)에 위스키와 칵테일을 무제한 제공한다.
다만, 무허가 술집인 만큼 여러 운영상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다른 술집만큼은 아니지만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들고, 공안 단속에 적발될 가능성도 있다. 올림픽공원 지역의 무허가 술집 운영자 켄은 한 부부가 운영하던 술집이 단속을 받아 문을 닫았으며, 그들은 단속을 두려워해 다시 술집을 열지 못했다고 말했다.
FT는 “불법 술집의 확산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이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무역전쟁을 벌이기 전부터 이미 가계 소비가 약화됐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며 “시민들이 외식 대신 테이크아웃을 선택하거나 집에서 요리하는 등 저렴한 선택지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