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세련된 문화 코드이자 ‘저항의 상징’으로 여겼던 프랑스가 다음달 1일부터 역대 가장 광범위한 금연 정책을 시행한다.

3일(현지시각) AP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오는 7월 1일부터 해변, 공원, 숲, 학교 근처 등 공공장소 대부분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다. 이 구역에서 흡연할 경우 최대 135유로(약 20만원) 벌금을 부과한다.

캐서린 보트랭 프랑스 보건장관은 “담배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사라져야 한다”며 “흡연할 자유는 아이들이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시작되는 곳에서 끝난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미디어 기업가 미셸 미미 마르샹과 텔레비전 진행자 카른 르 마르샹이 지난달 파리 법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연합뉴스

프랑스에서 담배는 단순한 기호품을 그 이상이다.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같은 대문호들은 흡연을 자유와 저항, 예술적 영감의 상징으로 여겼다.

전 세계 예술영화 시장을 주름잡던 프랑스 유명 영화 감독들은 작품에 꼭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넣었다.

 프랑스 암 퇴치 연맹(Ligue Contre le Cancer)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프랑스 영화 90% 이상에서 흡연 장면이 등장했다. 장 뤽 고다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샹젤리제 거리의 반항적 흡연 장면이나 브리지트 바르도가 ‘신은 여자를 만들었다’에서 선보이는 자유분방한 담배 연기가 대표적이다.

AP는 “길거리 카페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함께 담배를 즐기는 모습은 파리지앵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쿨하고 매력적으로 담배를 미화한 대가는 혹독했다. 프랑스 보건당국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매년 약 7만5000명이 흡연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다. 프랑스 전체 사망 원인 가운데 13%수준으로, 팬데믹 초기 연간 사망자 수(2020년 약 6만7000명)를 훌쩍 뛰어넘는다.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는 흡연으로 프랑스 사회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연구소 조사 결과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생산성 손실 효과는 연간 1560억유로(약 22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매년 2만~2만5000톤에 달하는 담배꽁초는 관광 비중이 큰 프랑스 주요 도시 미관을 해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AP는 ‘파리에서만 매년 약 20억개가 넘는 담배꽁초가 길바닥에 버려진다’고 전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78%는 광범위한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이번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00개 지자체는 자발적으로 7000개가 넘는 새 금연구역을 만들었다.

194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며 지방선거 안내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새 금연 정책은 단순한 보건 정책을 넘어 흡연에 대한 프랑스 사회 내 인식과 끽연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프랑스 성인 흡연율은 2021년 기준 약 29.2%로 유럽연합(EU) 평균 약 23%를 크게 웃돈다. 유럽연합(EU)은 현재 2040년까지 흡연율을 5% 이하로 낮추는 담배 없는 세대(Tobacco-Free Generation) 계획을 이행하고 있다. 15년 내로 흡연율을 25% 가까이 낮춰야 목표치에 도달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담배 없는 세대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단계라고 평가했다.

담배연구학회 대변인 다니엘 토마스 박사는 프랑스 매체 인터뷰에서 “흡연을 하지 못하는 공간을 늘려면 특히 청소년 흡연 시작을 예방하고, 흡연자들이 금연을 결심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프랑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가운데 관용과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프랑스가 오래 지켜온 고유한 카페 문화도 금연 정책 강도가 높아질 수록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반발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