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치러진 미국 명문 하버드대 졸업식은 저항의 목소리와 외국인 학생과 연대를 나타내는 표식으로 가득찼다.
하버드대는 29일(현지 시각)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캠퍼스에서 졸업생 약 9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374회 졸업식을 열었다.
학사모에 졸업 가운을 입고 캠퍼스 중앙광장의 행사장에 모여든 졸업생들은 가슴이나 모자를 흰 꽃으로 장식해 외국인 학생들을 향한 연대와 지지를 나타냈다. 이들은 ‘국제 학생 없는 하버드는 하버드가 아니다’ 등 트럼프 행정부의 외국인 학생 등록 차단 시도를 비판하는 문구 등이 적힌 스티커를 부착했다. 일부 교수들도 상징물을 부착하며 학생들의 저항에 동참했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이 졸업식 축사를 위해 연단에 올라 “환영합니다”라고 입을 떼자 졸업생들은 긴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총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가버 총장은 축사에서 “2025년 졸업생 여러분, 근처에서 왔든, 전국 곳곳에서 왔든, 세계 각지에서 왔든, 모두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그 과정에서 생각을 바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졸업생들은 ‘세계 각지에서 왔든’이란 가버 총장의 말에 다시 오랜 기립 박수로 화답하기도 했다.
이날 졸업식 특별 연사로는 에티오피아 출신 인도계 이민자로 감염병 분야 의사이면서 ‘눈물의 아이들’ 등 베스트셀러 소설의 작가로 유명한 에이브러햄 버기즈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가 나섰다. 그는 본인 역시 이민자라고 밝히고, 자신이 하버드대 졸업식 연단에 선 사실이야말로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버기즈 교수는 하버드대 졸업생들이 자신보다 스타나 노벨상 수상자의 졸업식 연설을 들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면서도 “합법적 이민자들과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다른 이들, 많은 외국인 학생이 부당하게 구금되고 추방을 걱정하는 현 상황에서는 나 같은 이민자의 말을 듣는 게 더 적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졸업생 발언에서도 정부의 압박에 맞서 학문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졸업생 연사로 나선 토르 라이만은 “우리는 입학할 때와는 훨씬 다른 캠퍼스를 떠나게 된다. 하버드는 미국의 고등교육을 둘러싼 전국적 투쟁의 중심에 서 있다”며 하버드대의 모토인 ‘진리(Veritas)’의 수호를 강조했다.
하버드대는 미국 대학 중에서는 처음으로 캠퍼스 내 반(反)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교내 정책 변경 요구를 거부한 후 트럼프 정부와 갈등을 겪어왔다. 유대인인 가버 총장은 정부 요구안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수용을 거부했고,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지원금 중단에 이어 외국인 학생 등록을 받지 못하도록 시도하면서 갈등이 격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