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성장 없이 물가만 빠르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소비자들이 회원제 창고형 매장으로 몰리고 있다. 대용량 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이들 업체의 전략이 물가 상승에 지친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3월29일(현지 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한 코스트코 매장에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다. / AP=연합뉴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 시각) ‘물가 상승에 지친 미국인들, 화장지와 저렴한 보르도 와인을 사기 위해 줄을 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코스트코, 샘스 클럽, BJ’s 홀세일 클럽은 엄선한 대용량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는 약속으로 더 많은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 업체 모두 연회비를 받는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으로, 매장을 이용하려면 최소 연 50~65달러의 회원비를 내야 한다. 특히 BJ’s 홀세일 클럽과 코스트코는 지난해 회원비를 인상했음에도 기존 회원의 90%가 갱신을 선택했고, 전체 회원 수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샘스클럽 측은 이익의 최대 90%가 회원비에서 나온다고 밝힌 바 있다.

FT는 창고형 할인매장 붐의 배경으로 2019년 팬데믹 이전보다 26% 오른 미국의 소비자 물가를 꼽았다. 여기에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외국산 제품 가격 인상이 예고되면서 소비자들의 물가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불황 속에서도 세 기업의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 코스트코는 회계연도 1분기 기준 동일 매장 매출(기존 매장에서 발생한 매출 변화를 측정하는 지표)이 전년 동기 대비 7.8% 증가했다고 밝혔다. 샘스 클럽과 BJ’s도 각각 6.8%, 3.9%의 동일 매장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크로거 앤 앨버트슨의 최신 분기 동일 점포 매출 증가율이 2%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형마트 타겟(Target)과 백화점 메이시스(Macy’s) 등 주요 소매업체들의 매출도 감소하고 있다.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을 제외하면, 미국 소매업계의 전반적인 상황이 좋지 않은 셈이다.

코스트코 매장에 모엣샹동 등 주류들이 진열돼 있다. / AFP=연합뉴스

소비자들은 매장 이용을 위해 지불하는 회원비보다 절약 효과가 더 크다고 인식하고 있다. 세 자녀의 엄마이자 BJ’s 회원인 데니스 카라스킬로는 “이런 업체들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다소 비용이 더 들긴 하지만, 잘 따져보면 훨씬 더 많이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 업체는 프로터 앤 갬블(P&G), 네슬레 등 주요 공급 업체에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동시에 경쟁력 있는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적극 판매하고 있다. 코스트코의 PB 브랜드 ‘커클랜드’와 샘스 클럽의 ‘멤버스 마크’가 각각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매장 수가 절대적으로 적고 쇼핑 시 긴 줄을 서야 한다는 점 등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높아진 인기에 힘입어 세 업체는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코스트코는 올해 15개 매장을 새로 열 계획이며, 샘스 클럽은 당분간 매년 15개 매장을 신규 오픈할 방침이다. BJ’s도 향후 2년간 25~30개 매장을 추가로 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최근에는 이들 업체들이 매장에서 고객 집까지 제품을 배송하며 아마존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컨설팅업체 리테일 시티즈의 브라이언 길덴버그 매니징 디렉터는 “소비자들은 기본적으로 저렴한 상품을 찾는 과정을 샘스 클럽이나 코스트코에 비용을 지불하고 아웃소싱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