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럽에서 가장 가치 있는 제약사로 평가받던 노보 노디스크가 비만 치료제 시장의 패권을 미국의 일라이 릴리에게 내주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 시각) 주력 체중 감량제인 위고비의 수요를 과소평가한 것이 시장점유율 하락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위고비와 젭바운드. /AP=연합뉴스

노보 노디스크는 당초 기존 제품인 삭센다의 낮은 수요를 근거로 위고비의 생산량을 보수적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처방량이 출시 5주 만에 삭센다의 5년치를 넘어서며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신규 환자 유입을 통제하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대응해야 했다. 이 틈을 타 경쟁사 릴리는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로 빠르게 시장을 확장했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릴리의 젭바운드는 최근 위고비를 미국 내 주간 처방량 기준으로 앞질렀으며, 릴리는 더욱 효과적인 신약 파이프라인도 보유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뒤늦게 생산시설 확충과 마케팅 전략 수정을 시도했지만, 대응 속도에서 경쟁사에 뒤처졌다는 평가다.

주가 급락과 함께 내부 리더십도 흔들렸다. 이달 들어 지배주주들은 라르스 프루에르가드 요르겐센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해임했으며, 새로운 CEO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CVS와의 계약을 통해 위고비를 선호 약제로 지정하는 등 만회에 나섰지만, 주도권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

시장 전문가들은 WSJ에 “노보 노디스크의 문제는 제품 자체가 아니라, 초기 판단 오류와 느린 실행력에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실망스러운 연구개발 결과와 복제약 시장의 확산으로 향후 실적 전망이 더욱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노보 노디스크 대변인은 “GLP-1 계열에서 여전히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공급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약업계 안팎에서는 차기 CEO가 더욱 공격적인 사업 전략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릴리와의 격차를 좁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