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소국 수리남이 대규모 석유 개발을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에 빠졌다. 최근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당과 야당이 사실상 동률을 기록하면서, 향후 수주간 대통령 선출을 둘러싼 연정 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정국의 혼선과 정치적 잡음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5일(현지 시각) 발표된 수리남 총선 공식 개표 결과, 야당인 국가민주당(NDP)이 18석, 집권 진보개혁당(VHP)이 17석을 확보했다. 수리남은 의회 간접선거 방식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며 전체 51석 중 3분의 2인 34석 이상을 확보한 당이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다. 그러나 양당 모두 과반 확보에 실패해 연립정부 구성과 정치적 협상이 불가피해졌으며, 이 과정에서 주요 정책이 지연되거나 외국인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총선은 특히 수리남이 본격적인 유전 개발에 착수하기 직전에 치러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보수 성향의 VHP 소속 차드리카페르사드 산토키 후보와 진보 성향의 NDP 소속 제니퍼 허를링스 시몬스 후보는 석유 수익의 활용 방식을 두고 상반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산토키 후보는 ‘경제 회복’에 방점을 두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기도 한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 협상, 연료 보조금 축소 등 시장 친화적 개혁을 추진하며 국가 재정을 회복 궤도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임 중 외국인 투자 유치가 확대됐으며 서방과 중국 석유기업들과의 협력도 활발히 이뤄졌다. 그러나 고강도 긴축 정책이 서민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그 여파로 VHP의 의석 수가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시몬스 후보는 석유 수익을 복지 확대와 자국 산업 육성에 우선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다국적 석유 기업과의 계약을 진행하되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석유 개발을 둘러싼 수익 분배를 명확히 하고 외국 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자는 국내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리남은 2028년부터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TotalEnergies SE)가 개발 중인 최대 규모 유전 ‘블록 58’에서 첫 원유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유전의 매장량은 약 7억6000만 배럴로 추산되며 이는 한국의 연간 석유 수입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토탈에너지는 향후 10년 안에 일일 생산량을 20만 배럴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으며, 이는 수리남 경제의 판도를 바꿀 잠재적 전환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단순한 권력 교체를 넘어, 수리남이 향후 어떤 개발 경로를 택할지를 가늠할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다만 블룸버그는 수리남이 석유 수익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장기적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자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