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최우방국’ 이스라엘과 거리두기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중동 순방에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제외했다. 이 기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라”고 압박하자 네타냐후 총리가 오히려 전면전으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두 나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전쟁 종결을 직접 촉구했다.

20일(현지시각) 미국 정치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에게 “가자 전쟁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워싱턴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악관 관계자는 악시오스에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에서 일어나는 일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며 “인질들이 귀환하고, 원조가 들어가기를 원하며, 가자 재건을 시작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에서 진정한 평화와 번영의 기회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은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중동 순방을 결정하면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이스라엘부터 찾았다. 반면 트럼프는 2기 행정부 취임 후 첫 해외순방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세 나라만 방문하고 이스라엘을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순방에서 이스라엘, 특히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 외교정책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습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이타마르 라비노비치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는 “이번 순방목표는 중동에 대한 관심과 인식을 이스라엘에서 자금력이 더 많은 걸프 지역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당시 납치된 이스라엘 인질 석방을 요구하며 트럼프 행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는 중동 순방 이전부터 ‘미국 우선주의’와 미군 개입 축소 의지를 누차 드러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는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며, 중동에서도 지정학적·안보적 맥락보다 경제·재정·무역 틀에서 이익을 정의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순방 기간 사우디에서만 6000억달러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본인 임기 중 경제 개발을 해치는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행정부 의지에 반하는 전면전 확대로 대응했다. 트럼프 중동 순방이 시작되자마자 이스라엘은 대규모 가자지구 공습 작전 ‘기드온의 전차(Gideon’s Chariots)’를 개시했다. 프랑스24는 20일 “단 하루 만에 최소 50명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전 이스라엘군 작전국장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트럼프의 중동 방문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반항적 아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가자전쟁 종결 시점과 전후 가자지구 처리 문제를 놓고 서로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가자를 이스라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유구역(freedom zone)으로 바꾸려 한다. 지난 2월 그는 “미국이 가자를 장기적으로 소유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다.

반면 네타냐후는 하마스를 가자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장기 통제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두 나라는 인질 석방 과정에서도 갈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하마스가 억류한 이스라엘-미국 이중국적자 에단 알렉산더 석방 과정에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배제했다.

 트럼프는 하마스와 협상을 마치고, 석방을 이끌어낸 다음 “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쯤 살아있지 않았을 수 있다”고 이스라엘 측 역할을 평가절하했다.

예멘 사나에서 열린 반미집회에 참가자들이 트럼프 대통령 영상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와 네타냐후 관계가 2020년 미국 대선 직후 악화하기 시작했다고 추정했다. 당시 네타냐후는 바이든이 트럼프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자, 가장 먼저 축하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에 따르면 이에 분노한 트럼프는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을 미묘하게 바꿨다.

트럼프는 최근 이란 핵 문제를 놓고도 이스라엘과 각을 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과 핵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네타냐후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을 강력히 옹호한다.

뉴스위크는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있다”고 전 이스라엘 총리 보좌관을 인용해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국제적 고립에도 대규모 가자 공세에 나선 이유로 네타냐후의 정치적 생존을 꼽는다. 그는 현재 극우 성향 연정 파트너 지지 없이 정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군사적 압박으로 하마스 협상력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적 계산도 작용했다.

미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이달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아랍 국가들과 관계 개선과 경제적 실리 확보에 외교력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가진 전략적 가치가 과거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왔다”며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 극우 세력 지지에 기대어 전쟁 확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 간 갈등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