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낮춘 가운데 이번 조치가 경제적 판단을 넘어 미국 의회, 특히 공화당을 향한 정치적 경고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19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개장 전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결정에 금융시장이 반응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헤더 롱은 19일(현지 시각)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하향한 시점은 단순한 경제 데이터보다는 정치적 메시지에 가깝다”면서 “의회 공화당에 ‘세금 법안을 처리하지 말라’는 무언의 요구를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재정 상황이 이미 심각한 가운데 공화당이 추가로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 법안이 미국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무디스가 드러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화당이 추진 중인 감세 법안은 향후 10년간 최소 3조3000억달러의 부채를 추가로 발생시킬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 통과된 ‘감세 및 일자리 법안’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무디스는 만약 이 법안이 연장될 경우 이자 비용을 제외한 연방 재정 적자만 해도 4조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급증하는 이자 비용이다. 무디스는 2021년 전체 세수의 9%에 불과했던 이자 지급 비중이 2024년에는 18%로 급증했으며, 2035년에는 3분의 1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일반적인 AAA 등급 국가의 이자 부담 비율인 2% 미만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문제의 감세안은 부유층에 큰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으며, 이를 충당하기 위해 저소득층 건강보험인 메디케이드와 식량 지원 프로그램 SNAP 등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방식이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이로 인해 약 1000만명이 메디케이드 수혜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내다봤다. 극우 성향의 스티브 배넌조차도 “이 법안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저소득·농촌층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며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부채는 이미 빠르게 누적되고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현재 36조달러를 넘어섰고, 이는 2017년 법안 통과 당시보다 16조달러가 늘어난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추가 감세를 추진하고 있으며, 월가에서도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는 점점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다.

미국 30년물 국채 수익률은 최근 5%를 돌파했고,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미국 내 차입 비용은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부담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롱은 “이 정도 규모의 세금 법안은 지금 시점에서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경기 침체를 자초할 수 있다”며 “공화당조차도 이 정책을 강행하는 것이 과연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인지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