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공무원들의 지출을 단속하고 나섰다. 중국 매체들은 이번 조치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2년 첫 집권 이후 꾸준히 강조해온 ‘근검절약’ 기조의 연장선이라고 평가하지만, 일각에선 미·중 관세 전쟁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시 주석이 혼란에 빠진 당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창 국무원 총리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이윤정 기자

지난 19일(현지 시각) 중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개정된 ‘당정기관 절약 실천 및 낭비 반대 조례’를 발표했다. 조례에는 해외 출장을 자의적으로 연장하는 것을 금지하고, 공무 식사 시 고급 요리와 담배, 술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조례는 다양한 부문에서 공무원들에게 긴축을 지시하고 있다. 공항에서 손님을 배웅하는 행위가 금지됐으며, 회의에서는 더 이상 호화로운 꽃꽂이가 제공되지 않는다. 또 사무용 가구도 가능한 한 오래 사용하도록 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건드리며 불필요한 정부 지출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인민일보는 해당 내용을 보도하며 “절약을 실천하고 낭비를 반대하는 것은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전통이자 훌륭한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규정이 “낭비를 부끄러운 일로 여기고 절약을 존경받는 문화 조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 긴축 조치에는 시 주석이 당을 장악하려는 속내가 담겨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WSJ는 “이 캠페인은 불확실한 시기에 중국 지도자 시진핑과 그가 당을 장악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와 중국 견제 노력은 시진핑이 자국을 기술 강국으로 변모시키려는 시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 담론을 연구하는 차이나 미디어 프로젝트의 데이비드 반두르스키 소장도 “이 같은 캠페인은 항상 권력과 정당성에 관한 것”이라며 “진정으로 공무원들의 청렴과 책임성을 확립하기보다는 당 지도부가 통제와 규율을 과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긴축 정책은 중국이 경기 침체 국면에 들어선 것과도 관련이 있다. WSJ는 지난 3월 양회에서 중국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이후에도 긴축 기조가 강화됐다고 전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를 5%로 설정하고, 재정 적자율을 역대 최고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의 4%로 정했다. 이는 정부 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토지 매매 수입 감소로 예산이 제한되고 지방 정부가 막대한 부채에 직면하면서, 시진핑 주석이 공무원들에게 지출을 줄이도록 촉구한 정책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과 같다”면서 “중앙 정부는 2023년 말에 관료들에게 ‘절약에 익숙해지라’고 지시하며, 시진핑의 부패 단속과 사치 행태 억제 캠페인을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집권 후부터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차원으로 공무원의 검소함을 강조해왔다. 지난 2014년에는 중국 사정당국은 국영 석유 기업인 페트로차이나를 대상으로 부패 수사를 벌였는데, 페트로차이나는 중국 권력 파벌 중 하나인 ‘석유방’ 근거지였다. WSJ는 “많은 전문가들은 수년간 진행된 이 같은 정책이 (시 주석의) 경쟁자를 숙청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