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주요 기술 기업들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며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려온 애플이 생성형 AI 시대에서는 오히려 추격자 위치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의 IT 전문기자 마크 거먼은 18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팟캐스트 ‘더 빅 테이크(The Big Take)’에서 “애플은 지난해 아이폰16 광고와 행사에서 화려한 AI 기능을 약속했지만, 실제 출시된 기능은 없었다”며 “광고와 제품 사이의 괴리가 현대 애플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표 사례로는 배우 벨라 램지를 등장시킨 광고 속 시리 기능을 꼽았다. 사용자가 카페에서 만난 사람의 이름을 AI가 기억해주는 장면이 담겼지만, 해당 기능은 출시되지 않았고 이후 광고도 삭제됐다. 이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은 허위 광고라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거먼은 “애플이 AI 기능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었다”며 “그 결과 소비자들은 실망했고, 기업의 기술적 신뢰에도 금이 갔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그간 아이팟, 아이폰, 에어팟, 애플워치 등 시장을 재편하는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기술 리더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오픈AI, 구글, 메타, 아마존 등이 주도하고 있는 생성형 AI 경쟁에선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평가다.
애플은 AI의 일부 기능을 오래전부터 탑재해 왔다. 예컨대 페이스 ID와 같은 생체인식 기술이나 일정 기반 알림 기능 등은 기계학습을 활용한 AI의 일종이다. 그러나 최근 트렌드인 텍스트 요약, 이미지 생성, 음성 합성 등 생성형 AI 분야에서는 별다른 기술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거먼은 “애플이 최근 공개한 ‘애플 인텔리전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며, 베타 버전은 마케팅만 요란했고 실체가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실제 애플은 작년 애플 인텔리전스의 뉴스 요약 기능에서 오류 논란을 겪으며 일부 기능을 철회하기도 했다. 영국 BBC가 자살 관련 헤드라인이 AI 요약에 잘못 반영됐다고 항의하자, 해당 기능은 삭제됐다.
애플의 AI 전략은 2018년 존 지아난드레아 전 구글 AI 수석을 영입하면서 본격화됐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시리와 AI 팀을 통합하고 기능 정비에 나섰으나 이후로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애플은 최근에서야 오픈AI, 앤트로픽 등과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며 iOS 차기 버전에 AI 기능을 본격 도입하려 하고 있다. 사파리 브라우저에도 AI 검색 기능을 통합하고, 시리와 글쓰기 도구에는 챗GPT 외에 구글이 생성한 AI인 제미니 추가 탑재도 검토 중이다.
거먼은 “애플은 아마존보다 AI 엔지니어도 적고, 차별화된 비전도 부족하다”며 “환각 문제 등 AI 특유의 기술적 난제를 피하고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접근해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애플 내부에서는 AI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향후 하드웨어 경쟁력에 직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거먼은 “AI는 스마트폰 이후 차세대 핵심 기술”이라며 “증강현실 안경, 휴머노이드 로봇 등 미래형 기기를 실현하려면 애플 자체 AI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폰이 멀티터치 기술로 시장을 바꿨듯, 미래의 하드웨어는 AI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며 “외부 기술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애플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조직문화와 제품개발 프로세스를 더욱 빠르게,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며 “지금처럼 뒤따르기만 해선 AI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