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해 약 6000만 명이 발이 묶였다.
원인을 두고 각국 전력망 운영사 간 해석이 엇갈리는 가운데, 유럽 전력망의 구조적 취약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스페인 언론 엘 파이스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각) 낮 12시 30분쯤 스페인 내 전력 수요가 2만7500MW(메가와트)에서 1만5000MW로 뚝 떨어지며 전력망이 붕괴했다.
AP는 이를 “수백만 명에게 영향을 미친 전례 없는 사건”이라며 “이베리아 반도 전체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정전으로 스페인과 스페인에서 전력을 수입하는 포르투갈에서 신호등, 지하철, 공항 운영이 중단됐다. 병원은 비상 발전기를 가동했다. 전자결제 시스템 마비로 슈퍼마켓에선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마드리드 오픈 테니스를 포함한 중요 스포츠 대회도 중단됐다.
스페인 정부는 마드리드·안달루시아·엑스트레마두라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동시에 치안 유지를 위해 경찰력 3만 명을 배치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전례 없는 전력망 붕괴”라며 29일까지 완전 복구를 약속했다.
발생 20여 시간 후인 29일 오전 7시 기준 수도 마드리드 인근 전력 공급은 100%로 복구됐다. 마드리드 도시 철도도 서서히 운행을 재개하고 있다.
스페인은 인근 모로코·프랑스에서 전력을 긴급 수입하고, 수력·복합화력 발전소 가동을 늘려 대응하고 있다. EU 차원의 비상전력 협조도 요청했다.
여파는 프랑스 남서부까지 이어졌다. 프랑스 전력망 운영사 RTE는 “스페인 전력 연결망 교란으로 일부 지역이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역대급 규모 정전이지만, 원인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관계 기관들과 전문가에 따라 해석이 제각각이다. 포르투갈 전력망 운영사 REN은 초기 “스페인 내륙에서 극단적 기온 변화로 대기 유도 진동이 발생해 400kV 초고압선이 동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REN은 이후 이 설명을 번복하며 “잘못된 분석”이라고 밝혔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사 REE의 에두아르도 프리에토 운영 책임자는 “프랑스와 전력 연결이 무너지면서 전체적인 시스템에 불균형이 일어났다”며 “시스템 불균형이 일어나면 연쇄 트립(자동 차단)이 일어나게 짜여져 있어 네트워크가 무너졌다”고 로이터에 설명했다.
스페인 소방당국은 화재로 고압선이 손상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사이버 공격 가능성은 일찌감치 배제했다.
과거 세계적인 대정전 사례를 보면, 2003년 북미 정전은 송전선 관리 부실과 소프트웨어 버그가 원인이었다. 2012년 인도 정전은 전력 네트워크 연계성 문제가, 2019년 아르헨티나·우루과이 정전은 시스템 업데이트 누락이 주 요인으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노후화한 유럽 전력망에 기술적 불안정성이 결합한 사고라고 추정했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겔의 게오르크 자흐만 연구원은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 온도 변동,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주파수 관리 어려움, 노후 인프라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유럽 어디서든 유사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