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이 트럼프발 관세 여파로 크게 출렁이는 가운데 유럽 투자자들은 비교적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LSE) 전경. /EPA=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 시각) 이 이유에 대해 유럽인들이 미국인보다 현금 보유 비중이 높고 주식 투자를 기피하는 전통적 투자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유럽 경제에도 결국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웨일스에 거주하는 은퇴자 수지 제임스의 경우 최근 주식시장의 급변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자신의 은퇴 자금을 현금 자산에 두고 있다. 그는 1987년 블랙먼데이와 2008년 금융위기를 모두 겪은 뒤 주식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밝혔다. 제임스 부부처럼 현금 위주 자산 운영을 고수하는 유럽 가계는 미국보다 훨씬 많다. 유럽중앙은행에 따르면 유럽인은 금융자산의 3분의 1을 현금이나 저위험 예금으로 보유하는 반면 미국인은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런 보수적인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글로벌 경제를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유럽 투자자들이 비교적 방어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유럽인은 지난 수십 년간 주식시장의 상승을 놓치며 수조 달러 규모의 부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EU 가계의 주식 투자 비중은 미국보다 낮다. 유럽 싱크탱크 브뤼겔에 따르면 유럽 가계의 33%가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51%에 달한다. 유럽 내에서도 지역별 편차가 있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는 투자 비중이 높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은 30% 이하다.

투자를 꺼리는 주요 이유로는 복잡한 절차와 높은 비용이 꼽힌다. 레베카 크리스티 브뤼겔수석연구원은 “미국에선 저비용 인덱스 펀드가 오랫동안 대중화됐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유럽은 각국의 기업법, 세법, 증권법 등이 엉켜 있어 일반인이 투자에 접근하기가 까다롭다.

은퇴 구조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개인이 직접 주식에 투자하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이 일반화돼 있지만 유럽은 아직 확정급여형 제도가 중심이고 사회보장 제도가 상대적으로 탄탄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구조가 미국과 유럽 간 자산 격차 확대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 가계 자산이 2009년 이후 EU 가계보다 약 3배 더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유럽이 항상 시장 충격에 강한 것은 아니다. 시티은행의 네이선 시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유럽산 제품의 미국 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급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유럽 기업의 생산과 고용을 위축시켜 전반적인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 관세를 피하려고 유럽 외 시장에 저가 제품을 대량으로 덤핑할 경우다. 그는 “무역 전쟁의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수요의 불확실성”이라며 “이는 결국 유럽의 가계와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