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연일 세계를 향해 ‘단결’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뭉쳐야 승리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이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야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뭉치는 세계, 즉 패권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동남아와 결속한 중국은 유럽과도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17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은 전날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와의 회담에서 “개방과 포용, 단결과 협력으로 ‘디커플링(공급망 분리)’과 ‘작은 마당 높은 벽(미국의 중국 기술 통제)’, 과도한 관세 징수에 맞서야 한다”며 “평화와 협력, 개방, 포용이라는 아시아적 가치관으로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에 대응하고, 아시아의 안정성과 확실성으로 세계의 불안정과 불확실성에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4일부터 동남아를 돌며 올해 첫 순방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시진핑은 연일 ‘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첫 방문지인 베트남에서는 “작은 배는 큰 파도를 견디기 어렵지만, 함께 타고 가는 배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며 미국의 무역 정책에 함께 맞설 것을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다음으로 찾을 캄보디아에도 언론을 통해 “마음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하고, 화합과 공생을 견지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내부에서도 이러한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전날 관영 신화통신 계열의 소셜미디어(SNS) 계정 뉴탄친은 미국에 맞서 “전 세계가 단결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뉴탄친은 “많은 국가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며 “미국의 협박에 불만을 품고 있는 반면, 약한 모습을 보이면 미국이 자비를 베풀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동맹국 중 가장 충성스러운 캐나다가 “미국에 의해 두 번이나 칼에 찔렸다”며 “단결이 없다면 미국은 우리를 하나하나 쉽게 패배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이 주변국을 하나로 모으려는 것은 무역전쟁 승리를 넘어 아시아 패권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 카리슈마 바스와니는 “중국은 미국 중심적인 아시아가 아닌, 다른 아시아를 원하고 있다”며 “이전 (미국) 행정부들은 이 지역의 중요성을 분명히 밝혔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일관된 계획이 없는 듯하다. 이로 인해 중국은 트럼프의 경제적 압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연대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동남아와 경제적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더한다. 중국은 2009년부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의 최대 교역국이었고, 아세안은 2020년부터 중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섰다. 미국 NBC 뉴스는 “시진핑은 트럼프가 고의적으로 국제 질서를 파괴하고, 훼손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의 스티브 창 중국연구소장의 말을 전하며 “베이징에 크게 의존하는 동남아 국가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일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다음 목표는 유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때 중국의 공급 과잉을 두고 갈등을 빚었던 양측은 이미 관계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 중인 고율관세 폐기 협상을 제기했다. 최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중국서 시진핑을 만나 협력 강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바슈와니는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이 단순히 경제적 힘만이 아니라 전략적 영향력도 포함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시진핑은 장기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현재로서는 그가 승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