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미(對美) 무역흑자와 불공정 무역 관행을 이유로 상호관세를 부과한 주요 교역국들과의 협상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특히 동맹이자 무역흑자 규모가 큰 한국과 일본을 우선 협상 대상으로 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에너지 관련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 시각) 트럼프 2기 출범 후 처음으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전화 통화를 갖고 관세 문제 등을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지속 불가능한 대미 무역흑자, 조선과 LNG 협력,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총리실에 따르면 양측은 무역균형을 포함한 경제협력 방안을 놓고 장관급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사실상 양국 간 무역 협상이 본격화된 셈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상호관세 및 주요 품목별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을 이날 미국에 파견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소한 다른 교역국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지난 2일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발표하면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에도 25%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율을 부과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약 70개국이 협상을 요청했고, 협상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다”며 “우리 교역 파트너들이 줄을 서 있다”고 밝혔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보복관세를 예고한 중국을 제외하고 모든 국가들과 관세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통화하며 협상을 진행 중이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인 한국과 일본을 협상 우선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을 분명히 우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동맹 우선 협상’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신속히 줄이기 위해선 한국과 일본처럼 대미 흑자가 큰 국가들과 먼저 협상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베선트 장관은 일본과 관련해 “우리는 일본과 큰 무역 불균형을 안고 있고, 일본 역시 그 불균형을 해소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해싯 위원장은 “행정부는 무역적자가 큰 주요 파트너국에 레이저빔처럼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 캐나다 등 다른 주요 교역국과도 관세 부과 이후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보복관세를 검토 중이어서 협상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협상은 더뎌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 난도가 낮은 한국과 일본을 우선 타결한 뒤 이를 성과로 홍보하고, 다른 국가들에 ‘협상이 보복보다 낫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전략이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인하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진 않고 있지만, 협상 여지는 충분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베선트 장관은 “확실한 제안이 있다면 좋은 거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도 이날 상원 청문회에서 “다른 나라가 상호주의와 무역적자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더 나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협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통령은 단기 면제나 예외에는 부정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수입 확대와 조선, 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제안하며 무역흑자 축소 방안을 마련해 미국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권한대행과의 통화 이후 “양국 모두를 위한 훌륭한 합의의 윤곽이 보인다”고 밝혔고, 해싯 위원장은 “미국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긍정적인 대화였다”며 “상당한 수준의 양보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는 협상 속도를 서두르기보다는 일본과 EU 등의 협상 추이를 지켜보며 신중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향후 다른 국가들이 더 유리한 조건을 얻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세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제조업 일자리를 되살린다는 목표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선트 장관은 “관세의 궁극적 목적은 일자리를 미국으로 돌리는 것이지만, 그 전까지는 관세 수입이 중요하다”며 “우리가 성공한다면 관세는 점차 녹아내리는 얼음덩이처럼 줄어들고, 그 대신 소득세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