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무역상대국에게 부과하는 상호 관세를 유예하지 않고 예정대로 부과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각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에 전화 회담을 요청하고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자국 내 관세를 없애거나 낮추는 방안을 제시하며 트럼프 대통령 회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7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이날 미국산 자동차 및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를 제안하며 미국에 협상을 촉구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승용차는 EU가 (대미 수출 시) 더 낮은 관세를 적용받는 건 사실이지만, 픽업트럭의 경우 미국의 관세율이 최대 25%”라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문제라면 대화를 통해 모두 0% 관세율로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46%에 달하는 고율의 상호 관세를 부과받은 베트남은 관세 발표 직후 가장 먼저 백악관에 접촉해 미국 제품에 대한 자국 관세를 철폐하겠다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럼 공산당 서기장과의 통화를 마친 뒤 “매우 생산적인 통화였다”며 곧 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2%의 관세를 부과받은 대만도 “보복 관세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최근 연설에서 이렇게 밝히면서 대만·미국 간 무관세를 논의하고, 정보기술(IT), 에너지 분야 미국 투자를 늘리며 농공업, 군수 분야 등 대미 구매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대만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1114억달러(약 164조원)로, 전체 수출액의 23%가 넘는다. 이 가운데 정보통신제품과 전자 부품 비중은 65.4%에 달한다.
인도네시아는 고위급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해 직접 협상에 나서겠다고 발표했고, 필리핀도 미국산 제품에 대한 자국 관세를 인하하겠다고 밝히면서 곧 미국에서 회담을 가질 것이라 발표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49%)이 부과될 예정인 캄보디아도 19개 품목에 대한 미국산 관세를 즉시 인하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
남아프리카 레소토도 자국의 의류 수출품에 부과될 예정인 관세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대표단을 구성하고 있다. 인구 200만명, 국내총생산(GDP) 20억달러(약 3조원) 규모의 작은 나라인 레소토는 미국의 글로벌 데님 브랜드 ‘캘빈클라인’, ‘리바이스’ 등에 납품하는 원단과 다이아몬드 등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으로부터 무역흑자를 보고 있다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높은 관세율(50%)을 부과받았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지난해 레소토의 대미 수출액은 총 2억3700만달러(약 29억원)다. 전체 GDP의 10%가량이다.
다만, 협상 전망은 밝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미국이 ‘비관세 장벽’을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관세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수출과 관련한 여러 규제들을 완화하라는 요구다. 이를 통해 미국의 수출량을 늘려 무역적자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흑자 없이는 협상도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수천억 달러를 손해 보고 있다”며 “흑자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어떤 나라도 (관세 부과의) 예외로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 정부가 줄줄이 관세 인하 제안을 내놓는 상황에서 백악관은 일정 부분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현재 ‘트럼프 관세’에서 예외를 받은 국가는 멕시코, 캐나다, 러시아 정도다. 루이스 구티에레즈 멕시코 통상부 차관은 “미국과의 우호적 대화 덕분에 관세 예외를 인정받았으며, 멕시코 수출품은 베트남·중국산과 달리 미국산 원자재를 다량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