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신도시 프로젝트인 ‘네옴시티’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다양한 경제개발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하는 사우디의 재정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기자 회견 후, 한 남성이 비전 2030 로고 앞을 지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현재 유가가 배럴당 약 70달러(약 10만원) 수준에 머물면서 사우디 정부의 재정 균형이 흔들리고 있고,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도 배당금을 줄이고 있다. 이로 인해 막대한 ‘오일 달러’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사우디는 당초 계획된 연간 3.7% 지출 삭감보다 더 큰 폭의 예산 감축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말 사우디 정부는 2025년 예상 수입을 3150억 달러(약 464조 원), 예상 지출을 3420억 달러(약 504조 원)로 설정하며 약 260억 달러(약 38조 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재정 적자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사우디는 올해 신흥 시장 채권 발행국 중 가장 큰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이 같은 국가 재정 문제는 사우디의 다양한 경제개발 프로젝트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는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발표한 탈(脫) 탄소 경제 성장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선포한 이후 네옴시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석유 수익을 기반으로 한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수행하고 있다.

더구나 사우디는 2029년 아시안 동계 게임, 2030년 엑스포, 2034년 월드컵 등 주요 국제 행사를 유치한 상황이다. 이러한 행사들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약 10개의 경기장과 인공 눈이 있는 스키 리조트 등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지출이 필요하다. 이미 ‘비전 2030’의 일부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규모가 축소된 상황에서, 다른 프로젝트들도 같은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아부다비 상업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모니카 말릭은 “유가가 더 급격하고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더 크게 줄여야 할 것”이라며 “예산 외 투자 계획에 대한 추가적인 조정과 재조정도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3년간 에너지 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의 주도로 원유 생산량을 줄여왔다. 2022년에는 유가가 배럴당 90달러(약 13만원) 이상으로 유지되며 이 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는 듯했지만, 원유 수요 감소와 다른 산유국들의 증산으로 유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3월 국제유가는 한때 3년 내 최저치인 배럴당 68달러(약 1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사우디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동맹국 모임인 OPEC+와 함께 4월부터 일부 감산 완화에 나선다. 앞서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OPEC+는 4월 1일부터 하루 13만8,000배럴을 증산하고, 점차 생산량을 늘려 2026년에는 하루 220만 배럴까지 늘리기로 했다. 유가 하락으로 현재의 생산량만으로는 정부 지출을 충당하기 어렵다는 판단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분간 사우디가 재정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차입금을 늘릴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FT는 사우디가 올해 초 2025년 예산 적자 및 만기 도래 부채 상환을 위해 370억 달러(약 55조 원) 조달 계획을 밝혔으며, 현재까지 184억 달러(약 27조 원)의 채권을 발행했다고 전했다. 국부펀드와 그 자회사들도 50억 달러(약 7조 원) 이상의 채권을 발행했다. 현재 사우디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29.7%이다.

HSBC의 중앙·동유럽, 중동 및 아프리카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사이먼 윌리엄스는 “현재 유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가가 사이클 내에서 어디에 정착하느냐와 생산량의 흐름”이라며 “사우디가 개발 계획을 확대하면서 지출이 더 빠르게 늘어났고, 그 결과 과거보다 석유 수입에 더 의존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