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4시쯤 홍콩 센트럴 지역의 한 골목. 본격적인 퇴근 시간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곳곳에서 식사를 즐기는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미쉐린 가이드 등에서 ‘맛집’으로 인정 받은 일부 식당은 이미 만석이었고, 매장 앞에는 길게 늘어선 줄도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한 홍콩인은 “밤낮으로 외식하는 문화가 일반적”이라며 “아침 일찍부터 밖에서 식사하는 모습도 흔한 풍경”이라고 말했다.
홍콩이 아시아 외식 업계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홍콩은 여성의 사회 참여 비율이 높고, 높은 주거비로 인해 부엌이 작아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외식 문화가 발달했다. 홍콩 사람들은 월 평균 식비의 60% 이상을 외식에 사용한다. 신디 웡 홍콩투자청 관광 및 호텔 부문 책임자는 “홍콩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주 11회 외식을 한다”고 했다. 한 주 식사의 절반 이상을 외식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외식 문화가 발달하면서 홍콩은 좁은 면적에 비해 많은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현재 1만7000개 이상의 레스토랑이 홍콩에서 운영 중이다. 홍콩 인구가 75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약 427명당 1개의 레스토랑이 있는 셈이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음식 수준도 높다. 작년 기준 홍콩에는 79개의 미쉐린 별을 받은 식당이 있으며, ‘더 체어맨’ 등 6곳이 아시아 50대 베스트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홍콩의 외식 시장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강력한 방역 조치로 인해 홍콩의 식당 수는 1만 5000여 개로 급감했다. 그해 홍콩의 식당 수입(Restaurant Receipts)은 102억 달러(약 14조 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30% 가까이 급감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해 높아진 식당 공실률은 임대료 하락으로 이어졌고, 이는 팬데믹 종료 후 홍콩 외식 업계에 기회가 됐다.
신디 웡 홍콩투자청 관광 및 호텔 부문 책임자는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식당 임대료가 30% 정도 낮아졌다”며 “보통 임대 계약을 3~5년마다 갱신하지만, 최근에는 낮은 임대료를 유지하기 위해 10년 단위로 임대 계약을 맺는 식당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F&B(식음료) 기업이 홍콩에 진출하기에 지금이 적기”라고 덧붙였다.
팬데믹 종료 후 해외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들이 홍콩 외식 업계에 활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약 4500만 명의 관광객이 홍콩을 찾았다. 팬데믹 이전인 2018년의 6500만 명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의 1600만 명과 비교하면 거의 3배에 달한다. 이로 인해 2023년 기준 홍콩의 식당 수입은 약 140억 달러(약 20조원)로 전년 대비 26.1%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홍콩 외식 업계가 성장하면서 중국 본토의 F&B 기업들도 홍콩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JLL(존스랑라살)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홍콩에 진출한 외국계 F&B 브랜드 중 중국 본토 기업의 비중은 18%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상반기에는 33%로 증가했다. 또 K컬처의 높은 인기로 한국 음식을 찾는 현지인들이 늘면서 한국 식당의 비중도 전년 대비 2% 증가했다.
홍콩 정부 차원에서도 외식 산업 성장을 장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F&B 관련 전시회와 박람회가 개최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에도 아시아 채식 음식 박람회가 홍콩에서 열렸다. 또 홍콩 정부는 지난해 고도수 주류에 대한 세율을 대폭 개편해 알코올 도수가 30도 이상이며 수입 가격이 200 홍콩 달러(약 3만 8000원) 이상인 주류 제품에 대한 관세를 100%에서 10%로 인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