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산불로 인해 12일(현지 시각) 기준 16명이 사망하고, 건물 1만2000여 채가 소실됐다. 이번주 강풍까지 예고되면서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번 화재가 ‘미 역사상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재난’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11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우드랜드 힐스에서 바라본 팰리세이즈 화재 현장. 소방용 비행기가 소화제를 뿌리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캘리포니아는 산불의 연료가 되는 목재를 줄이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소방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의문은 수년간 산불에 대비해 온 캘리포니아주의 최대 도시가 이번에는 왜 화재를 막지 못했는가이다”라고 지적했다. WP는 캘리포니아 산불 피해를 키운 세 가지 원인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도시 개발이 산불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이번 산불 피해가 가장 심한 LA 북부 ‘알타데나’와 서부 해변 ‘팰리세이즈’는 수십 년 전 개발된 지역으로,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단독주택이 늘어서 있다. 화재가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이지만 지리적 특성 상 진화와 대피가 어렵다. 더구나 이들 지역은 기상 변화로 가뭄과 폭염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산불 위험성이 더 커진 상황이었다.

실제 WP가 캘리포니아 산림방화국 및 국가 산불센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LA 카운티에서 이번 화재로 소실된 지역의 70% 이상이 ‘화재 위험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분류된 곳이었다. 팰리세이즈 산불 피해는 대부분 화재 위험이 높은 곳에서 발생했다. 닉 알즌 알타데나 시의원은 “우리는 이번 화재 전에도 화재가 발생하면 진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주민들의 ‘완충 지대’ 확보를 거부한 점이 꼽힌다. 캘리포니아주는 산불 고위험 지역 주민들에게 집 주변에 초목이 없는 5피트(ft·1피트는 30.48cm) 둘레의 완충 지대를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주택 소유자들이 완충 지대 확보를 꺼렸고, 이번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 촬영된 팰리세이즈 항공 사진에서 푸른 나무로 둘러싸인 주택이 확인되기도 했다. WP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고급 주택가의 흔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30년간 캘리포니아 소방서에서 일한 켄 핌롯은 ‘5피트 규칙’에 대해 “매우 논란이 많았다”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울타리와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에 간섭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메도우 지역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메도우 화재 안전위원회’ 리더 윌리엄 램지어도 집 주변에 완충 지대를 만들도록 돕겠다는 자신들의 제안이 집주인들에게 종종 무시됐다고 밝혔다.

8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 말리부의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 주변에 팰리세이즈 화재로 파괴된 건물과 차량이 방치돼 있다. / AFP=연합뉴스

5피트 규칙이 주 정부 차원에서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산불로 1973년부터 살던 팰레세이즈의 집을 잃었다는 홀디스 토펠은 지역 당국이 5피트 규칙을 준수하는 일을 주민들에게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집 주변은 정리된 데 반해 집 옆 협곡에는 덤불이 쌓여있었다면서 “완충 지대 규칙을 지켰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물 부족도 이번 산불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WP는 캘리포니아 상수도 시스템은 대규모 산불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고, 여러 곳에서 동시에 산불이 발생하자 상수도 시스템에 결국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특정 지역에서 물을 저장하는 탱크와 이를 이동시키는 펌프 시스템이 과부하에 걸린 것이다. 급기야 지역 소방당국은 주민들에게 화재 진압 용수 공급을 위해 가정에서 수돗물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LA 카운티 북서부 라스 비르게네스 지역 수도국 대변인 마이클 맥너트는 “산불에 대응하도록 설계된 수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물탱크는 엄청난 화재 진압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충분한 양의 물을 빠르게 채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더구나 많은 주택들이 불에 타면서 파이프가 파열돼 주택가 곳곳에서 물이 흘러 넘쳤다고 맥너트는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물 부족이 뉴섬 주지사 탓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8일 “뉴섬 주지사는 지금 사실상 종말이 온 것처럼 불타는 캘리포니아 여러 지역에 매일 물을 흘려보내는 ‘물 복원 선언’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면서 “캘리포니아 주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