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부동산 시장이 중국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가파른 경제 성장으로 부를 쌓은 후 이를 과시하기 위해 홍콩에 호화 주택을 사들였던 부자들은 헐값에 주택을 매각하고 있다. 주택은 물론 상업용 부동산까지 침체의 그림자가 뒤덮이고 있다.

지난 8월 중국 홍콩의 빅토리아 항구에 정박한 배에 홍콩 깃발이 보인다. /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주택 가격은 오랜 기간 가파름 상승세를 보였다. 거의 20년 동안 주택 가격이 끊임없이 오르면서 홍콩은 전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가 됐고, 재정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너무 작아 ‘관 주택’이라고 불리는 극소형 주택을 임차해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홍콩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건설업자부터 부유한 투기꾼까지, 홍콩 주택 시장의 불평등에 기여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중한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면서 “그들은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불가사의한 상승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그 붕괴의 후유증으로 자금이 부족해졌다”고 1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NYT는 한때 중국 부동산 재벌로 유명했던 헝다그룹(에버그란데)의 몰락을 원인으로 들었다. 쉬자인 회장이 1997년 광둥성에서 설립한 헝다는 부동산으로 시작해 금융, 헬스케어 사업을 아우르는 재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무리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2021년 무너졌다. 이에 홍콩 법원이 올해 초 헝다에 청산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중국 본토와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홍콩의 특성 상, 헝다 그룹이 촉발한 중국 부동산 침체는 금융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 위축,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지연이나 중단 등으로 이어져 홍콩 부동산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나 정 CBRE 전무이사는 “중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홍콩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고, 부동산 시장도 항상 높은 상관 관계를 보였다”면서 “중국 경제가 하락하면 홍콩 경제도 따라간다”고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홍콩의 호화 아파트 '오푸스 홍콩'.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아파트 중 한 채가 헐값에 팔렸다. / 연합뉴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부동산은 주택이다. 홍콩 부동산회사 존스랑라살(JLL)의 조셉 탕 회장은 “(현 시점에서) 판매 가능한 유일한 부동산은 주거용 부동산이다. 가격을 충분히 낮추면 구매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산 중턱에 지은 아파트 ‘오푸스 홍콩’ 두 채, ‘블랙스 링크’로 알려진 언덕 길에 위치한 유럽 스타일의 저택 세 채, ‘플랜테이션 로드’ 근처의 맨션 네 채 등 매물로 나온 총 일곱 채의 주택 중 두 채를 제외한 모든 부동산이 각각 수천만 달러에 팔렸다고 NYT는 전했다. 기존 가격의 최소 ‘반값’ 내지 3분의 1 수준이다.

주택 시장만 타격을 받은 건 아니다. NYT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금융, 법률 회사 및 기업 고객이 자리했던 홍콩의 주요 오피스 빌딩 소유들도 떠난 고객을 대신할 새로운 임차인을 찾느라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CBRE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의 약 17%가 비어있는 상태다.

부동산 시장 침체는 홍콩 금융 시장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상업용 부동산 채무 불이행이 급증하면서 은행들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S&P 글로벌의 분석가들은 보고서에서 홍콩의 부동산 부문이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고, 금융기관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홍콩 부동산 시장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릴 전망이다. NYT는 “부동산 전문가들은 홍콩에서 더 많은 매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올해 홍콩에서는 5000만 달러(약 703억원) 이상에 달하는 20건의 부동산이 달하는 매물로 나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