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와 로레알,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합작해 만든 뷰티 브랜드 시효(SHIHYO). /로레알

호텔신라와 프랑스 뷰티 기업 로레알이 합작해 만든 새 화장품 브랜드 시효(SHIHYO)가 중국 시장 진출도 전에 중국에서 뭇매를 맞았다. 브랜드 출범을 알리는 한글·영문 보도자료에서 24절기의 기원을 중국이 아닌 ‘동양’ ‘아시아’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중국 네티즌의 반발을 산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로레알 중국 법인은 “24절기는 중국에서 기원한 귀중한 문화 유산”이라며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공식 사과 후 중국 최고 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 소속 중국역사연구원까지 “중국인의 문화를 훔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며 비판에 가세하면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효는 호텔·면세점 운영사 호텔신라, 뷰티 그룹 로레알, 사모펀드 운용사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세운 합작사 로시안(Loshian)이 개발한 화장품 브랜드다. 로레알이 3자 합작사의 최대주주로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호텔신라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로시안 합작 법인의 나머지 지분을 동일 비율로 나눠갖고 있다. 모든 스킨케어·헤어케어 제품에 쌀뜨물, 인삼수, 절기마다 수확한 24종의 약초 원료를 배합한 특허 성분 시효24를 넣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24절기가 브랜드 전체 콘셉트로 사용된 것이다. 원료는 모두 한국 농가에서 조달한다고 한다. 내년 상반기 서울신라호텔에 시효의 한국 첫 매장 ‘서울 가든’이 문을 열 예정이다.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L’Oréal)이 중국 알리바바그룹 산하 티몰의 11.11 쇼핑 행사에 참여했을 당시 마케팅 이미지. /알리질라

중국 네티즌은 로레알이 21일 낸 보도자료에서 24절기를 중국의 것이 아닌 동양·아시아의 것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했다고 문제삼았다. 로레알은 한글 보도자료에서 “시효는 시간의 지혜라는 의미로, 동양의 24절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같은 날 낸 영문 보도자료엔 “시효는 아시아의 24절기 지혜(the Asian wisdom of the 24 seasons)에서 영감을 받아 새롭게 만든 스킨케어 뷰티 브랜드”란 문구가 담겼다.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엔 로레알과 한국이 중국 24절기와 중약을 훔쳤다며 비난 글이 쏟아졌다. 28일 낮 12시(중국 시각) 기준 웨이보에서 ‘파리 로레알 24절기’란 해시태그는 조회수 1382만 회를 기록했다. 웨이보 이용자들은 로레알 산하 브랜드 리스트를 공유하며 불매 운동도 벌이고 있다. 중국 본토·홍콩·대만·일본·한국으로 구성된 로레알 북아시아존(North Asia Zone)은 로레알그룹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5%(2021년)로, 두 번째로 큰 지역별 시장이다.

로레알 중국 법인이 '24절기 기원 논란'과 관련해 2022년 11월 25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공식 계정에 올린 사과문. /로레알 웨이보

로레알은 즉각 머리를 숙였다. 로레알 중국 법인은 25일 웨이보 공식 계정에 설명문을 내고 “한국 합자회사 새 브랜드가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24절기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정확한 설명이 없다”며 “사과드린다”고 했다. 또 “우리는 중국의 유구한 역사 문화를 대단히 사랑하고 존중한다”며 “우리는 늘 24절기가 중국에서 기원한 귀중한 문화 유산이고, 중화민족 전통문화의 중요 구성 부분이며, 동시에 기타 아시아 문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웨이보에서 ‘로레알 중국 사과’ 해시태그는 28일 낮 12시(중국 시각) 기준 조회수 942만 회를 기록했다. 그러나 중국 네티즌은 로레알이 중국에서만 사과문을 발표했다며 비난을 거두지 않고 있다. 중국 이외 지역에서도 사과문을 내지 않으면 중국 시장에서 퇴출시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중국역사연구원은 27일 웨이보 계정에 24절기가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작에 등재된 점을 언급하며 “따라서 24절기는 ‘중국인의 문화’이며, 결코 모호하게 ‘아시아인의 문화’나 ‘동양문화’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일부러 모호하게 하고, 멋대로 절취하고, 마음대로 지적하는 행위를 결코 내버려둘 수 없다”며 중국인의 문화 우월주의와 애국심을 자극했다. 해당 게시물에 달린 댓글 중 공감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파리 로레알이 예로부터 한국이 중국의 것이라고 동의했다”는 내용의 댓글이다.

서울신라호텔. /호텔신라

호텔신라는 중국 내 ‘24절기 기원 논란’과 로레알 중국 법인의 사과와 관련해, “로레알과 호텔신라, 앵커는 모두 각국의 문화와 유산을 존중한다”며 “24절기가 고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공식 입장에는 3사의 의견이 반영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시효 관련 커뮤니케이션은 로레알과 호텔신라, 앵커의 합작 법인인 로시안을 통해 결정되고 있다”고도 했다.

호텔신라는 면세점·온라인 채널 등을 활용해 중국 소비자에게 시효 화장품을 판매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신라 전체 매출에서 면세 사업이 약 90%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방역을 위한 중국의 오랜 봉쇄·격리 조치로 면세점 최대 고객인 중국인 대상 매출이 사라지면서 면세 사업은 침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로 선택한 것이 화장품 사업이란 분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뷰티 기업 중 하나인 로레알의 브랜딩 능력과 시장 지배력, 사모펀드의 재무 능력과 시장 파악 능력에 호텔신라의 뷰티 면세 유통 노하우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하면 럭셔리 뷰티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