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대부분 선진국에서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으나 영국은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11.1%까지 치솟았던 영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영란은행(BOE)의 금리 인상으로 2.6%까지 내려오며 진정되는 듯했으나 최근 다시 반등해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27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은 “영국은 코로나19 이후 소비 급증, 공급망 혼란, 에너지 가격 급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끈적한 인플레이션’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영국의 물가 상승률은 3.5%로 프랑스(0.9%), 독일(2.2%) 등 유럽 주요국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특히 에너지 비용이 물가 상승을 이끈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은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에너지 가격의 직격탄을 맞았다. 게다가 영국은 전기요금을 정할 때 전체 발전 비용의 평균이 아닌 가장 비싸게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의 단가를 기준으로 삼는 ‘한계가격제도’를 적용하고 있어 가스값 상승이 전기세 인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노동시장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노동력 부족과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가 이어지며 지난 1분기 정규 급여 상승률은 5.6%를 기록, BOE의 목표치(3~3.5%)를 크게 웃돌았다. 최근 3년간 최저임금도 각각 9.7%, 9.8%, 6.7%씩 인상되며 임금 상승 압력이 지속됐다.

이와 함께 생산성 부진도 문제로 꼽힌다. 임금이 오르는 와중에도 1분기 영국의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은 오히려 0.7% 감소해 주요 7개국(G7) 중 독일·프랑스·미국보다 낮고 이탈리아·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민관 투자 부족이 장기적인 생산성 정체를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다. 런던정경대(LSE) 연구에 따르면 2019년 말부터 2023년 3월까지 브렉시트로 인한 국경 비용 증가로 약 70억 파운드(약 13조원)의 추가적인 정부 지출이 발생했으며 이는 식료품 가격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 속에서 저소득층이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필수 소비재 지출 비중이 높은 데다, 대출 조건을 자주 재조정하는 영국의 금융 시스템 특성상 금리 인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영국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 이후 네 차례 인하돼 현재 4.25%까지 낮아졌지만, 이는 유로존의 일곱 차례 인하(4.0% → 2.25%)에 비해 더딘 편이다.

다만 낙관적인 전망도 일부 제기된다. BOE는 현재의 금리 수준이 물가 억제에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 2027년 초까지 인플레이션을 2%대로 안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일각에선 미국과의 무역 협상이 진전됨에 따라 중국 등 수출국들이 영국을 대체 시장으로 활용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BOE 금융정책위원회의 앨런 테일러 외부 위원은 “물가 상승률이 2%대에 안착할 경우 BOE는 최종적으로 2.75% 수준으로 금리를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