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명품업계의 강자 샤넬이 지난해 급격한 실적 둔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와 북미에서 소비가 둔화되고 전반적인 브랜드 운영 비용이 급증하면서 수년간 이어온 성장세가 본격적인 조정기로 접어든 모습이다.
20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샤넬은 지난해 기준 영업이익 44억8000만달러(약 6조2101억원)를 기록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30% 급감한 수치다. 같은 기간 매출은 187억5000만달러(약 25조 7925억원)로 이 역시 전년보다 4.3% 줄었다.
지역별로는 아시아 시장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샤넬의 아시아 지역 매출은 7.1% 감소해 전체 실적에 큰 타격을 줬으며 북미 지역 매출도 4.2% 줄어들었다. 유럽은 0.6% 소폭 증가에 그쳤다.
과감한 투자도 수익성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샤넬은 지난해 자본 지출을 전년 대비 43% 늘린 18억달러로 확대했으며, 이 중 약 6억달러는 파리 몽테뉴 거리와 캉봉 거리,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 부지 등 부동산 매입에 투입했다. 여기에 마케팅 및 브랜드 홍보 비용으로 24억달러를 지출하기도 했다.
브랜드 정체성 변화도 매출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5년 간 컬렉션을 이끌었던 수석 디자이너 버지니 비아르가 지난 6월 사임하면서 샤넬은 디자인 리더십 공백기에 들어섰다. 이후 경영진은 케어링 그룹 보테가베네타 출신 마티유 블레이지를 영입, 오는 10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나 업계에서는 이 기간 동안 소비자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가운데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도 커지면서 샤넬이 가격 인상을 단행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유럽산 제품에 대해 10%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7월부터 20% 추가 관세를 예고하면서 샤넬은 미국 내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을 일시 중단했다. 앞서 경쟁사 루이비통, 에르메스, 까르띠에 등을 소유한 리치몬드그룹 등은 이미 제품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샤넬은 격변의 시기를 맞아 당분간 허리띠를 졸라맬 것으로 보인다. 필립 블롱디오 샤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지속 가능한 수익을 위해 비용 구조 전반을 재점검할 것”이라며 “이윤 안정을 위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샤넬은 올해 미국 내 인력 약 70명을 감원했으며 세계 전 지사의 인력 규모도 동결할 방침이다. 리나 나이르 샤넬 최고경영자(CEO)는 “지금은 단기 실적보다 브랜드의 장기적 비전을 재정립하는 데 집중할 시기”라며 “우리는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을 위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