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전환의 가속화와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미국 IT 업계가 대대적인 구조 개편에 나섰다. 기업들이 정규직 개발자 채용을 줄이는 대신 계약직 위주로 인력을 충원하면서 구직자들은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1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기업들이 전반적인 채용에 있어 ‘큰 망설임(great hesitation)’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 대응해 필수 인력만 선별적으로 채용하고 있으며, 채용에 걸리는 기간도 과거보다 최대 2~3배 길어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사관리기업 로버트하프(Robert Half)가 최근 리더급 기술직 담당자 약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는 올해 계약직 채용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용 공고에 담긴 요구 역량도 과거보다 대폭 늘었다. WSJ에 따르면 최근 미국 기업들이 요구하는 직무 역량은 평균 10~12가지로, 과거 평균 6~7가지 수준에서 크게 증가했다. 특히 AI 기술을 반영한 직무 역량에 대한 요구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채용 방식도 구직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화 면접 단계에서부터 연봉 기대치를 낮추도록 압박하거나, 최종 면접 직전 단계에서 갑작스럽게 채용을 취소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최근 해고 이후 구직 중인 스티브 레빈은 WSJ 인터뷰에서 “영업 엔지니어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었지만, 갑자기 채용 계획이 철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채용 시장이 얼어붙은 배경에는 IT 기업들의 강한 비용 절감 기조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 전역에서 IT 분야 채용 건수는 약 21만4000건 줄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중견 IT 기업들도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입 개발자와 데이터 분석가 등 저연차 직무는 AI에 빠르게 대체되며 타격이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반면 AI 기술 기반의 직무는 여전히 높은 수요를 보이고 있다. WSJ는 올해 미국 내 채용 공고 중 약 4분의 1이 AI 관련 역량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비즈니스 플랫폼 링크드인(LinkedIn)에 따르면 지난 8년간 미국에서 AI 관련 직무 채용은 약 640% 증가했다.

기업들은 절감한 비용을 AI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일례로 영어 학습 서비스 듀오링고의 루이스 폰 안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사내 이메일을 통해 “AI로 자동화할 수 없는 업무에만 신규 채용을 허용하겠다”며 “성과 평가에서도 AI 활용 여부를 반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기업에 소속된 직원들 또한 생존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AI 역량을 기르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 인력의 급여 자문을 제공하는 애니 머레이 컨설턴트는 “지금 채용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구직자는 AI 관련 전공자 정도”라며 “그마저도 박사 학위 소지자여야 생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