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경영난과 안전 논란에 시달리던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이 카타르항공과 역대 최대 규모 수주 계약을 맺으며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4일(현지시각) 로이터는 카타르항공이 보잉과 787 드림라이너 130대, 777X 30대 등 총 160대 확정 주문과 50대 옵션을 포함한 210대(약 960억달러) 규모 계약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이번 계약은 중동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카타르 에미르(군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보잉 최고경영자(CEO) 켈리 오트베르그와 카타르항공 CEO 바드르 알미어는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계약서에 서명했다. 약 130조원에 달하는 이번 계약은 보잉 역사상 최대 규모다.
블룸버그는 “이번 계약은 보잉 부활의 강력한 신호”라며 “보잉이 왕년의 명성을 되찾을 중요한 기회를 잡았다”고 전했다.
보잉은 2018년 이후 올해까지 고난의 7년을 겪었다. 야심작이었던 ‘737 맥스(MAX)’ 기종이 연이어 추락했다.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 610편, 2019년 3월 에티오피아 항공 302편에서 총 346명 희생자가 나왔다. 두 사고로 737 맥스는 전 세계적으로 20개월간 운항이 중단됐다. 보잉이 쌓아온 명성과 신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1월에는 알래스카 항공 737 맥스9 여객기가 이륙 직후 동체 일부가 뜯겨 나가 비상착륙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즉각 보잉 생산 공정에 대한 대대적인 품질 감사에 들어가는 초강수를 뒀다.
이 외에도 787 드림라이너 기종은 동체 결함, 부품 누락 등 크고 작은 품질 문제가 끊이지 않으며 “안전 불감증이 만연했다”는 내부 고발까지 터져 나왔다.
안전이 생명인 항공업계에서 신뢰가 무너지자 보잉은 올해 1분기에만 3억 5500만달러(약 4800억원)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난이 심화됐다.
CNN은 지난해 10월 “보잉이 심각한 현금 흐름 위기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벼랑 끝에 몰린 보잉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부터 다져온 카타르와 끈끈한 우호 관계가 이번 계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가 보잉 구원투수로 나섰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제조업 부활과 ‘아메리카 퍼스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해석을 나왔다.
보잉은 미국 내 주요 고용주이자, 방위산업 핵심축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항공기 제조 산업은 대표적인 과점 시장이다.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과 긴 항공기 개발 기간, 엄격한 국제 안전 기준 탓에 신규 업체 진입이 극히 어렵다. 사실상 글로벌 시장은 미국 보잉과 프랑스 에어버스가 양분한다.
전문가들은 항공 산업 특성상 대형 수주 계약은 곧바로 생산량 증가와 현금 흐름 개선으로 이어져 경영 정상화의 발판이 된다고 평가했다.
과거 에어버스 역시 2013년 에미레이트항공로부터 150대를 수주 받으며 재무 위기를 극복했다. 보잉 역시 이번 초대형 계약으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계약 발표 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보잉 주가는 이날 하루 20% 급등했다.
항공 컨설팅 업체 에어로다이내믹 어드바이저리의 리처드 아불라피아는 BBC 인터뷰에서 “수주 자체는 분명 긍정적이지만, 보잉이 직면한 시스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전혀 별개 사안”이라며 “생산 라인 안정화와 품질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