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으로 치닫던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90일간 휴전한다. 이 기간 서로에게 부과한 관세를 115%포인트씩 인하하기로 하면서다. 단 3개월 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미국의 대중국 관세는 54%, 중국의 대미국 관세는 34%로 다시 높아진다. 세계 경제계를 뒤흔든 미·중 무역전쟁이 이대로 안정화 수순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중 양국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양측 경제 및 무역 관계가 양국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중요성, 지속가능하고 장기적이며 상호 호혜적인 양측 경제 및 무역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관세 조정 방안을 내놨다. 지난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가 직접 만나 마라톤 협상을 벌인 결과물이다.
◇ 美는 30%, 中은 10%만 남겼다… 앞으로 90일 추가 합의
먼저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중국에 추가로 부과한 관세 145%를 30%까지 낮추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후 2, 3월 각각 10%씩 총 20%의 관세를 중국에 물렸고, 4월에는 무역적자 해소를 목적으로 상호관세 34%를 또다시 부과했다. 이후 중국의 보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를 125%로 91%포인트 높였다. 미국은 이 91%포인트는 취소하되, 상호관세 34% 중 24%는 9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남은 10%에 더해 2, 3월 부과한 20% 관세는 유지돼 중국은 당분간 관세 30%를 내야 한다.
중국 역시 미국에 대한 관세 125%를 10%만 남기고 모두 유예 또는 폐지하기로 했다. 중국은 2, 3월까지만 해도 미국산 수입품 일부에만 보복 관세를 매겼다. 그러다 지난달 2일부터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한 전면 대응에 돌입, 똑같이 34%의 관세를 미국산 수입품 전체에 부과했다. 이후 8일, 9일 이틀에 걸쳐 관세를 84%, 125% 등으로 높였는데, 이를 34%만 남기고 나머지 91%포인트는 전부 취소하기로 했다. 이 34% 중 24%는 90일간 시행이 연기된다. 지난달 2일 이후 발표된 희토류 수출통제 등 대미국 비관세 조치도 폐지 또는 일시 정지하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 양국은 오는 14일까지 이러한 관세 조정을 모두 마칠 예정이다.
90일이라는 시간을 번 미·중 양국은 무역 관련 이견을 좁혀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양측 간의 최근 논의에 비춰보면, 지속적인 협의가 무역 및 통상 분야에서 양 당사국 간 우려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상호 개방, 지속적 소통, 협력 및 상호 존중의 정신으로 관련 작업을 계속한다”라고 했다. 베선트는 기자회견에서 “양측 모두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 긴박한 양국 경제, 빠르게 합의했지만… 갈등 재점화 불씨도 여전
미국과 중국이 협상에 돌입한 지 이틀 만에 이러한 결과를 내놓은 것은 양국 경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올해 1분기의 직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0.3%를 기록, 2022년 1분기(-0.1%)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했다. 중국은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5% 넘게 성장하긴 했지만, 갈수록 수출 성장률이 둔화하고 내수 침체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다.
단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예기간 동안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미국의 대중국 관세는 54%, 중국의 대미국 관세는 34%로 다시 높아지게 된다. 블룸버그는 “중국은 미국이 올해 부과한 모든 관세를 철폐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무역 적자를 줄이거나 종식하겠다는 미국의 목표와는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협상에 참여한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연간 1조2000억달러(약 1702조2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보고 있다.
미국이 합성마약 펜타닐의 중국발 유입을 이유로 중국보다 20%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점도 양국 간 갈등을 키울 수 있는 불씨 중 하나다. 중국은 “우리는 세계에서 마약 퇴치 정책이 가장 엄격하고, 실행이 철저한 국가 중 하나”라며 반발, 해당 관세가 즉시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1기 때도 미·중 양국은 무역전쟁을 치루다 협상 단계에 돌입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8년 7월 미국이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매기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2020년 1월 1단계 무역 합의에 서명하기까지 18개월가량 추가 관세 부과와 협상이 이어졌다. 당시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과 에너지 구매량을 2000억달러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못했다. 블룸버그는 “코로나19 기간 중국과의 무역 적자가 급증하면서 현재의 무역 전쟁이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중국은 이번 협상 결과를 두고 ‘자국의 승리’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관영 중국중앙TV(CCVT)가 운영하는 소셜미디어(SNS) 계정 위위안탄톈은 “실질적인 진전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행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미국이 이른바 상호 관세를 남용한 뒤 중국은 처음으로 상호 관세에 반격한 국가였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투쟁으로 단결을 추구하면 단결이 남는다”며 “이번 소통 결과는 앞선 투쟁의 기초 위에서 양국이 마주 보고 얻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쟁으로 단결을 추구하면 단결이 남는다’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이 남긴 말이다.
중국 매체 관찰자망 역시 SNS를 통해 “중미의 제네바 경제·무역 회담 공동성명 발표는 중국이 무역 전쟁에서 거둔 중대한 승리이자 중국이 투쟁을 견지한 결과”라며 “미국의 무역 괴롭힘에 맞서 항쟁할 용기가 조금도 없는 국가들과 비교하면 이번 승리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