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인!”

홍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찬 공이 골대로 들어가자, 이를 생중계하던 더우인(중국판 틱톡) 사용자가 큰 소리로 환호했다. 댓글 창 역시 ‘나이스 볼(好球)’로 도배됐다. 이번 축구 경기에는 키 82㎝에 몸무게 17㎏짜리로, 유치원생 정도 크기의 휴머노이드 네 대가 둘씩 팀을 이뤄 참여했다. 득점까지 과정은 험난했다. 공이 골대 밖으로 나가는가 하면, 골대 바로 앞에서 멈춰 선 적도 있었다. 한 로봇은 공 쪽으로 다가가다가 골대에 부딪혀 휘청이기도 했다. 골키퍼가 아예 자리를 비우고, 골대와 가까운 곳 한 가운데 서서 찬 덕에 겨우 첫 골이 나올 수 있었다.

중국에서 연일 휴머노이드의 신체적 능력을 선보일 수 있는 각종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다. 최근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하프 마라톤 대회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엔 축구와 농구 등 구기 종목 경기까지 개최한 것이다. 휴머노이드 기술력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음에도 중국이 이러한 무대를 계속 마련하는 것은 관련 기업들을 독려해 산업 현장의 자동화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성장 동력 약화를 첨단 기술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휴머노이드 생태 대회’에서 휴머노이드가 축구 경기를 선보이고 있다. /웨이보 캡처

◇ 축구 경기 출전한 로봇들… 기술 진보에도 정식 경기는 역부족

25일 커촹반일보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 산하 학술단체인 중국전자학회는 전날부터 장쑤성 우시에서 제1회 체화지능 로봇 운동회를 진행 중이다. 체화지능이란 물리적 신체를 보유한 인공지능(AI)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뜻한다. 전날 포럼에 이어 이날 운동회가 본격 시작됐는데, 5㎞ 단거리 달리기와 크로스컨트리, 축구, 농구, 댄스 등 다양한 종목에 100개 이상의 로봇 기업이 참여했다. 중국 로봇 산업 대표 주자인 유니트리와 러쥐 유비테크 등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관심을 모은 종목은 축구다. 축구는 달리기 능력이 기본적으로 받쳐줘야 하는 데다, 유연함과 민첩성, 상황 판단 능력 등도 필요해 휴머노이드 기술 수준을 종합적으로 진단할 수 있다. 이날 대회를 지켜본 결과, 휴머노이드 기술은 여전히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았다. 광둥성 로봇 기업 가오칭지뎬(高擎機電)이 개발한 로봇들은 한자리에 가만히 서서 공을 차는 것은 가능했지만, 공을 몰면서 달리는 기술은 부족해 보였다. 휴머노이드들은 발을 쉬지 않고 구르면서 조금씩 움직였는데, 그러다 보면 어쩌다 공이 발에 맞는 식이었다. 공을 상대편에게 패스하거나 골키퍼가 아예 골대를 벗어나 반대 방향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시각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휴머노이드 생태 대회’에서도 휴머노이드들의 축구 경기가 펼쳐졌다. 이곳 로봇들 역시 제대로 된 축구 경기를 선보이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 신체 능력이 점차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엿볼 수 있었다. 한 로봇은 경기장 가운데서 무릎을 꿇더니, 팔을 앞으로 뻗어 팔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 엔지니어가 갑자기 경기장에 들어와 발로 로봇을 세게 차 넘어뜨렸는데, 로봇은 곧바로 일어나 균형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시 운동회 관계자는 “이번 스포츠 대회 목적은 기업들이 자사 제품과 강점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기업의 적용 시나리오를 확대하며, 산업 유치 속도를 가속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25일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열린 '제1회 체화지능 로봇 운동회'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농구공을 던지고 있다./웨이보 캡처

◇ 경쟁 판 깔아주는 中 정부… 美中 경쟁이 촉매제

중국 정부는 지난 19일 베이징 남부 이좡에서 열린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하프 마라톤 대회에 이어 이날 체육대회까지 각종 휴머노이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외신들은 중국이 정부 주도 정책에 힘입어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석권한 것처럼, 휴머노이드 분야에서도 같은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자체 경쟁을 독려하고, 이를 통해 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휴머노이드를 장악하려는 경쟁에서 중국은 단순히 우위를 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직접 휴머노이드 산업을 육성하고 관련 무대를 마련하는 데는 미·중 갈등이 촉매제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이전부터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산업 경쟁력 감소 우려를 안고 있었는데, 미국과의 관세 전쟁까지 겹치면서 이를 돌파할 무기가 절실한 상황이다. 기술적 우위를 과시하는 동시에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휴머노이드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휴머노이드가 한 가지 작업을 반복 수행하는 데 특화된 산업용 로봇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공장 자동화를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 덕에 중국 휴머노이드 공급망은 점차 탄탄함을 갖춰가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카메라와 센서 등 휴머노이드의 눈과 손, 근육, 관절을 생산하는 상장 기업 약 60개 중 48개가 중국 기업이다. 이 중 지난해 매출이 10억달러를 초과한 기업은 12개 기업에 불과했지만, 10곳이 중국계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러한 공급망 덕에 2030년까지 중국산 휴머노이드 생산 비용이 지금의 절반 수준인 1만7000달러(약 2400만원)까지 줄어들 것으로 봤다.

세계 주요 경제 기관들은 중국이 휴머노이드 산업에서 대변혁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2050년까지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가 7조달러(약 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고, BoA는 2060년까지 인구 3명 당 1명 꼴인 휴머노이드 30억대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다. 골드만삭스는 시장 규모가 2023년 1500억달러에서 10년 안에 20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봤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세 은행 모두 중국이 이 혁명의 선두에 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