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전세계 수출국들이 시름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 철강 산업이 전례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베트남 당국과 철강업계는 중국산 저가 철강의 유입을 막으면서 신(新) 생존 전략을 찾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3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은 베트남이 자국의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각종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산업무역부는 지난 16일부터 한국과 중국에서 수입되는 아연도금강판에 대해 최대 37.13%의 임시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앞서 3월에는 중국산 열연코일 철강제품에 최대 27.83%의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러한 조치는 중국이 국내 건설 경기 침체를 상쇄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에 저가 철강을 과잉 공급한 데 따른 여파다. 여기에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밀접한 제조 국가들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베트남 역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 부과라는 고육책(苦肉策)을 선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높은 경제 성장률을 자랑하는 베트남은 공장, 고속도로, 공항 등 각종 제조·사회 인프라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빠른 속도로 철강 산업을 성장시켜 왔다. 일명 ‘중국의 뒷마당’으로 불릴 정도로 중국산 저가 철강을 대량 수입해 강판(鋼板) 등 생산에 투입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 그 비결이다. 지난해 베트남의 중국산 철강 수입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 2020년 대비 약 500%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중국의 물량 공세와 미국의 고(高)관세 부과라는 이중고에 직면하자 베트남은 중국산 철강 수입에 칼을 빼든 한편, 미국과의 관계 호전에 힘쓰고 있다. 미국·중국·러시아 등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대나무 외교’를 기조로 하는 베트남으로썬 이례적인 행보다.

지난 2일 46%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받은 베트남은 발표 직후 가장 먼저 백악관에 접촉, 미국 제품에 대한 자국 관세를 철폐할 것을 제안했다. 15일에는 자국을 통한 중국산 제품 대미(對美) 우회 수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미국의 중국 압박 노선에 적극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다만 베트남을 향한 중국 측의 구애도 만만치 않다. 지난 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국가서열 1위인 또 럼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하며 반미 연대 구축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양국은 경제 세계화의 수혜자로서 전략적 자제력을 높이고 자유무역체제와 공급망 안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베트남 철강업계는 생산비 절감, 수출 시장 다변화 등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베트남 최대 철강기업인 호아팟그룹(Hoa Phat Group JSC)은 올해부터 생산 단지를 확대해 평균 생산 비용을 전년 대비 11% 절감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국영 철강기업인 VN철강(VNSteel)은 자국을 넘어 인도네시아 등 해외 시장으로 판매처를 넓히고 있다.

철강 전문 정보업체 칼라니시코모디(Kallanish Commodities Ltd.)의 토마스 구티에레스 분석가는 “관세 조치가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시장 개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더 많은 베트남 철강업체들이 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