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물가를 더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이번 무역 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물가 안정을 통해 시간을 벌어야 하는 만큼, 대규모 경기 부양책에 나설지 주목된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3월 CPI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0.1% 떨어졌다고 10일 밝혔다. 전월 하락폭(-0.7%)보다는 개선됐지만, 로이터 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0.0%)에는 미치지 못했다. 중국 월간 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기준)은 지난해 8월(0.6%)부터 12월(0.1%)까지 줄곧 하락세를 보이다 올해 들어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춘제(음력 설) 연휴 효과와 당국의 내수 진작책 등에 힘입어 1월 0.5%로 급반등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한 달 뒤인 2월, 13개월 만의 마이너스를 기록한 뒤 3월까지 좀처럼 부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3월 PPI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5% 떨어졌다. 전월(-2.2%)보다 하락폭이 확대됐고, 시장 전망치(-2.3%)에도 미치지 못했다. PPI는 생산자가 판매하는 도매 물가를 나타내는데, 이를 기반으로 소비자 가격이 결정되는 만큼 CPI의 선행 지표로도 꼽힌다. 3월 PPI가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30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하게 됐다.
중국은 이번 물가 지표가 계절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기조적 디플레이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둥리쥔 중국 국가통계국 수석통계사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신선 식품이 대량 공급됐고, 비수기로 인해 여행객 수가 감소하면서 여행 가격도 하락했다”며 “국제유가가 하락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비자 수요를 촉진하는 정책 효과가 점차 나타나고 있다”며 “CPI의 전년 대비 기준 하락폭이 전월보다 0.6%포인트 축소됐고, PPI도 첨단산업 발전과 소비 촉진 정책, 설비 업그레이드 정책 효과 덕에 가격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중국 물가 부진을 미국과 벌이는 무역 전쟁과 연관 짓고 있다. 중국 산업계는 경기 호황 시절 생산능력을 크게 늘렸는데, 경기 부진으로 인해 자체적으로 물량을 소화할 수 없게 됐다. 해외 수출을 통해 이를 해결해 왔는데, 무역 전쟁 국면에서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결국 재고를 해소하려면 국내 시장에서 가격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는 디플레이션을 심화시킨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게리 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해외 시장을 잃는 것은 중국 기업의 이익 마진에 압박을 가하고, 국내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말했다.
중국의 디플레이션 우려는 당분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지난 2월부터 이날 현재까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총 125% 추가 부과했다. 사실상 중국 제품을 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홍콩발 소액 상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주는 ‘소액 면세 제도’도 다음 달 2일부터 폐지한다. 이에 따라 800달러 이하 모든 상품은 제품 가격의 90% 또는 개당 75달러(6월 1일부터는 150달러)의 관세를 내야 한다. 직격탄을 맞는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해외 시장 다각화에 힘쓰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공격적 할인에 나설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두 나라의 정부 관계자들은 단기간 내 (양국간) 긴장 완화 전망은 거의 없다고 비공식적으로 말하고 있다”라고 했다.
단 중국이 무역 전쟁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는 만큼, 대규모 경기 부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물가를 진정시켜야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전날 경제 전문가 및 기업가들과 좌담회를 열고 “외부 충격이 우리나라 경제의 안정적 운영에 일정한 압력을 가하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며 “한층 적극적인 거시 정책을 잘 시행하고, 선제적으로 기존 정책이 조속히 시행돼 효과를 발휘하도록 추진하며, 상황에 따라 적시에 새로운 추가 정책을 도입해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에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책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 CNBC는 “중국 정책 입안자들은 디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할 필요성을 점차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