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주변국과 전략적 상호 신뢰와 산업 및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본격화한 이후 첫 시진핑의 메시지로, 주변국과 우호적 관계를 도모해 미국의 압박을 헤쳐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국의 관세 위협 조치는 “실수에 실수를 더한 것”이라며 미중 양국 무역은 ‘불균형’ 상태가 아니라는 정부 입장도 별도로 내놨다.
9일 관영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시진핑은 전일부터 이날까지 베이징에서 ‘중앙주변공작(업무)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는 시진핑이 첫 임기를 시작했던 지난 2013년에 이어 12년 만에 열렸다. 회의에는 시진핑을 비롯해 리창 국무원 총리,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등 주요 국가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다.
이날 연설에서 시진핑은 “우리나라와 주변국 간 관계가 현대 이래 가장 좋은 상태”라며 “주변국 구도와 세계의 변화와의 깊은 연계를 위한 중요한 단계에 진입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국과 운명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주변국과 전략적 상호 신뢰를 공고히 하고, 지역 국가들이 자체 발전의 길을 유지하도록 지원해야 하며, 갈등과 차이를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발전과 융합을 심화하고 높은 수준의 상호 연결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산업 및 공급망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역의 안정을 공동 유지하고, 안전과 법 집행 협력을 통해 다양한 위험과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이날 시진핑의 발언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크게 격화한 가운데 발표돼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중국에 부과한 관세는 총 104%다. 중국이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미국산 수입품에 34%의 관세를 부과하자, 트럼프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50%포인트 높이면서 관세 공방이 걷잡을 수 없이 가열되고 있다.
시진핑의 ‘주변국 관계 강화’ 방침은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 돌파 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웃 국가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를 포함해 14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한국과 일본, 필리핀 등 미국의 동맹국도 있다. 이러한 주변국과 우호적 관계를 도모해 정치·경제적으로 협력하면 미국의 압박을 상쇄할 수 있다는 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미국이 동맹국에도 상호관세를 부과해 전 세계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도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중국에 유리한 상황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진핑은 이달 중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3개국을 순방할 예정인데, 이 역시 주변국 외교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다.
이날 시진핑의 메시지에 더해 중국은 미국과 순순히 협상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중미 경제무역 관계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중국 측 입장’ 백서를 통해서다. 총 2만8000자 분량의 이 백서는 ▲ 중미 경제·무역 관계는 본질적으로 호혜적이다 ▲ 중국은 진지하게 중미 1단계 무역 합의를 이행했다 ▲ 미국은 중미 1단계 무역 합의 의무를 위반했다 ▲ 중국은 자유무역 이념을 실천하며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준수한다 ▲ 일방주의·보호주의는 양자 무역 관계 발전을 해친다 ▲ 중미는 평등 대화와 호혜 협력으로 무역 이견을 해결할 수 있다 등 6개 장으로 구성됐다.
중국 상무부는 이번 백서 관련 입장에서 양국 간 무역 적자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미국 측 주장에 대해 “중미 상품 무역 격차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낳은 필연적 결과이자 양국 비교우위 및 국제 분업 구조가 결정한 것”이라며 “중국은 결코 일부러 (상품 무역) 흑자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실 중국의 경상계정에서 흑자의 국내총생산(GDP) 내 비율은 2007년 9.9%에서 2024년 2.2%로 떨어졌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백서는 “관세로 위협하는 조치는 실수에 실수를 더한 것으로 이는 미국 측이 전형적인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고 보호주의에는 출구가 없다”며 “중국은 무역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결코 중국인의 정당한 권익이 침해되고 박탈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만약 미국이 관련 제한 조치를 강화하려고 고집한다면 중국은 확고한 의지와 풍부한 수단을 갖고 있으며 반드시 단호하게 반격해 끝까지 맞설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