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계 순자산은 2024년 3분기 168조8000억 달러(약 24경9165조6800억 원)로 전분기 대비 2.9%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 실업률은 4.1%로 1월(4.0%)보다 소폭 증가했으나, 우려스러운 수준은 아니라는 게 경제학자들의 평가다. 이렇듯 미국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하지만 미국인 중 자신의 삶이 부유하다고 느끼는 비중은 작다. 이는 미국 전체 부(富) 증가는 주식과 주택 가치 상승에 따른 것으로 상류층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감소하고 소득이 증가했음에도 미국 경제가 양극화하면서 부와 재정 안정성 격차가 벌어진 탓이다.
무소속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국 상위 10% 가구가 소유한 자산은 미국 가계 순자산의 69%에 달한다. 반면 하위 50% 가구가 소유한 부는 3%에 불과하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 하위 50% 가구의 부도 증가했다. 그러나 가계 순자산 증가는 주택 가격 상승, 주식 상승에 기반한 것으로 현금으로 쉽게 전환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 전체 부가 증가했음에도 미국 가계의 경제적 신뢰도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 전 세계 공급망 타격 우려 등 소비자 심리는 오히려 악화했다. 이는 관세 부과 우려로 인한 주식 시장 침체가 시작되기 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소득에 따라 경제에 대한 인식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시간대가 지난 4년 동안 매월 소비자 심리를 조사한 결과, 소득 하위 3분의 2에 해당하는 사람은 경제에 비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득 상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이들의 경제 전망은 최근 반등했다.
팬데믹 당시 받았던 보조금 지급이 중단된 것도 경제 상황이 악화했다는 인식이 강화하는 데 영향을 줬다. 2020년과 2021년에 연방 정부가 지원한 보조금 덕분에 수천만 가구는 부채를 갚고, 더 많이 저축하고, 평소 소득보다 더 나은 생활 수준을 누렸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은 끝났고, 생활 수준은 낮아졌다. 이를 보여주듯 JP모건체이스 인스티튜트가 800만 명 이상의 은행계좌 소유자의 데이터를 추적한 결과 2021년과 2023년 사이 구매력은 감소했다. JP모건체이스 인스티튜트는 “숫자로 측정되는 경제 데이터 외에 정신적이고 무형적인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중산층과 노동층을 포함해 부유하지 않은 미국인은 팬데믹과 팬데믹 이후 보조금으로 인해 자산이 변동했다고 인식한다”고 짚었다.
여기다 주택 가격이 2020년 이후 폭등한 것도 오히려 본인이 부유하지 않다는 인식을 높였다. 소득 하위 50% 계층의 순자산 중 약 절반은 부동산이 차지한다. 그동안 주택 가격은 올랐으나, 현금화할 수 없었던 탓에 상승한 식료품 비용을 충당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자율이 높아지고 주택 공급은 부족해지면서 첫 주택을 사거나 다른 주택으로 이사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35세 미만 성인의 주택 소유율은 1980년에 50%로 정점을 찍었고 현재는 30%로 떨어졌다. 부동산 시장은 3년 가까이 얼어붙었고, 이로 인해 고소득 가정의 경제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1월 20일 취임 이후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부과 위협을 가하면서 경기침체,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줬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3월 초,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치를 각각 1.7%, 1.5%로 하향 조정했다. JP모건은 미국이 올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이 40%라고 예상했다. JP모건은 “지금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고조된 상태”라며 “트럼프가 4월에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상호 관세가 발효되면 경기 침체 위험은 50%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