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명 속옷 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 /AP 연합뉴스

미국의 유명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Victora Secret)이 모기업 L브랜드에서 분할해 별개의 상장기업으로 독립을 앞두고 ‘세계 최고의 여성옹호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 지나치게 마르거나 가슴이 풍만한 여성 모델만을 앞세워 미의 기준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 업체가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 ‘보통의 여성을 위한 속옷 회사'로 브랜드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것이다.

20일(현지 시각) 미 경제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L브랜드 기업 분할로 독립한 빅토리아 시크릿과 목용용품 브랜드 배스앤바디웍스(Bath & Body Works)는 전날 원격으로 투자자 간담회를 열고 상장 후 이들 기업의 구체적인 브랜드 이미지와 구체적인 성장 전망을 발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기존 사업 방향의 실패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고 CNBC는 전했다. 마틴 워터스 빅토리아 시크릿 최고경영자(CEO)는 “우리가 틀렸다. 완전히 잘못 짚었다”며 “현대 여성들과의 연관성도 신뢰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이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는 우리 기업의 초점을 남들의 시선에서 개인의 감정으로, 또 남성이 원하는 겉모습에서 여성 스스로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2000년대 초반 미국 속옷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렸다. 특히 1995년부터 시작된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에는 지젤 번천이나 타이라 뱅크스, 하이디 클룸 등 최정상급 모델들이 커다란 날개를 달고 이른바 ‘엔젤(Angel)’로 출연했고 전 세계에 생중계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여성의 성적 매력만을 앞세운 마케팅으로 수익을 챙겼다. 이 업체는 ‘남성이 원하는’ 여성의 매력을 속옷에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7년 11월 20일 상하이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 현장. /AP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수년 간 빅토리아 시크릿의 매출은 급락했다. 남성 기준의 성적 매력만 부각시켜 여성성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커지면서다. 특히 2010년 이후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거부하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운동이 젊은층의 화두로 떠올랐다. 지나치게 마르지도 풍만하지도 않은 일반인 모델을 앞세워 실용성을 강조한 속옷 업체들이 속속 등장했고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았다.

결국 빅토리아 시크릿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15년 32%에서 지난해 20%까지 하락했다. 매출 규모도 2018년 81억달러에서 지난해 54억달러로 떨어졌다. 경영진은 이날 간담회에서 “우리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며 “잃어버린 고객들을 되찾기 위해 ‘세계 최고의 여성 옹호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향후 3~5년 내 한자릿수 중반대 매출 성장을 목표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사측은 △전 매장에 플러스 사이즈 마네킹을 추가하고 △검정색 위주의 어두운 매장 인테리어와 조명을 바꿔 밝은 분위기로 전환하며 △임산부 속옷과 산후 기능성 보정 속옷 및 수영복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인종차별 및 성 상품화라는 비난 속에 2018년 폐지된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도 조만간 재개할 방침이다. 단 반드시 문화적으로 유의미한 방식에 기반해 시작할 것이라고 워터스 CEO는 말했다.

시장분석업체 에버코어ISI의 오마르 사드 애널리스트는 “투자자와 소비자는 수년 간 빅토리아 시크릿이 보여왔던 ‘그들만의 섹시' 전략 대신 ‘그녀들을 위한 섹시' 전략을 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인식적인 부문에서도 진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 기업이 얼마나 변화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변화에 대한 시도가 실제 매출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빅토리아 시크릿은 지난달 동성애자 축구선수와 브라질 출신 성전환 모델 등 성 소수자, 아프리카 난민 출신 모델과 여성 사진작가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여성들을 모델로 기용했다고 밝혔다. 이 업체의 모델이 된 미국 여자축구팀 주장 메건 러피노는 “여성의 매력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여성의 성적 매력만 강조하는 의미에서 섹시한 속옷을 입어야만 섹시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