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 부과를 시사하자 가격 인상을 우려한 소비자들이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23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내에서 그레일드(Grailed), 더리얼리얼(The RealReal), 스레드업(ThredUp) 등 패션 중고 거래 앱 사용률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고 거래를 처음 접하는 신규 사용자 유입은 물론, 기존 사용자들도 앱 사용 빈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내 중고 거래 앱 다운로드 수는 전 분기 대비 평균 18% 증가했다. 특히 MZ세대가 애용하는 디팝(Depop)의 다운로드 수는 동기간 68% 급증했으며 포쉬마크(Poshmark)와 이베이(eBay)도 각각 28%, 15% 증가했다. 이들 앱은 모두 의류, 신발 등 패션 소비재를 중심으로 중고 거래를 지원한다.
이 같은 중고 시장의 활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고율 관세 조치와 무관치 않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최대 14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으며 내달 2일부터는 800달러(약 114만 2400원) 이하의 해외 직구 상품에 적용되던 면세 혜택도 폐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쉬인, 테무 등 중국 기반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줄줄이 가격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관세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중고 거래 시장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알론 로템 스레드업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이번 관세 조치는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기준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며 “이미 국내에 재고를 확보한 중고 플랫폼들은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설명했다.
중고 거래 수요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여 왔다. 스레드업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중고 의류 시장 규모는 2020년 270억달러(약 37조원)에서 2023년 430억달러(약 1777억원)까지 증가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고, 불필요한 소비를 지양하는 일명 ‘저소비 코어(Underconsumption Core)‘ 성향의 Z세대가 주축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관세 정책이 중고 거래 활성화에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올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카시 소차 연구원은 “백악관은 언제든 관세 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며 “관세가 낮아지면 (중고 거래에 대한) 관심은 순식간에 사그라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에 대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향후 2~3주 내로 중국에 대해 관세율을 정할 것”이라며 정책 선회 의사를 밝혔다. 전날에는 “중국과 협상을 하게 되면 ‘제로(0)’는 아니겠지만 관세율이 상당히 내려갈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고율 관세가 유지되더라도 중고 거래 수요 급증으로 인해 중고품 가격이 오를 경우, 중고 시장의 접근성이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소차 연구원은 “코로나19 시기 신차 생산 차질로 중고차 가격이 급등했던 것처럼, 중고 시장도 과열될 수 있다”며 “결국 가격 상승이 소비자 접근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