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카드결제 시스템은 오랜 기간 동안 비효율적인 구조 속에 정체되어 왔다. 그 중심에는 신용카드사가 승인과 매입을 동시에 독점하고 있는 이른바 ‘3당사자 체계’라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 체계는 가맹점과 카드사 간의 직접적 연결을 막아, 현장의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는 서비스 제공, 수수료 인하를 유도할 수 없는 비경쟁적 환경, 혁신 서비스의 정체 등 다양한 문제를 낳고 있다.

지급결제업계는 “가맹점은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고, 카드사는 실제 소비자 접점에서 멀어진 채 시장 변화에 둔감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으므로 선진화된 결제시장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지급결제사를 제도적으로 매입사化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국내 카드결제 프로세스의 구조적 특징

한국의 카드결제 구조는 카드사가 승인과 매입을 모두 전담하는 이른바 ‘3당사자 체계’다. 카드회원, 카드사(Issuer), 가맹점으로 단순화된 이 구조에서는 ‘4당사자 체계’와 비교하여 카드사가 가맹점의 니즈를 구체적으로 반영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반면 글로벌 표준은 카드회원, 카드발급사(Issuer), 매입사(Acquirer), 가맹점의 ‘4당사자 체계’를 따르고 있다.

이 구조에서는 카드발급사는 카드회원 유치와 승인 업무에 집중하고, 매입사는 가맹점 모집, 정산, 단말기 설치 등 서비스를 전담함으로써 시장 내 자율경쟁과 전문화를 이끈다.

한국의 경우 PG사와 VAN사가 오랫동안 가맹점과 카드사 사이의 연결고리를 담당해왔다. 만약 이들의 역할이 없다면 국내의 모든 가맹점은 카드사별로 단말기를 따로 설치하고 API를 개별 연동해야 하는 비효율의 극단을 경험했을 수밖에 없다.

전자지급결제 업계는 “그간 국내에서는 사실상 PG·VAN이 ‘매입사’의 역할을 수행해왔다”며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표준에 맞게 PG·VAN의 매입사화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역할을 명확히 재정의하는 구조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 지급결제 구조 개편이 필요한 이유

근본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지급결제 서비스 질의 향상은 어렵다. 3당사자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다양한 결제수단을 추가하더라도, 결국 가맹점은 각 솔루션별로 단말기나 시스템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 비효율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가맹점의 서비스 선택권 부재와 수수료 경쟁의 실종이다. 카드사가 승인과 매입을 독점한 구조에서는 가맹점은 카드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이는 수수료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며,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구조를 낳을 우려가 있다.

◆ 글로벌 시장, 이미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매입사 중심의 경쟁체계를 통해 카드사는 자사 브랜드 경쟁 매입사는 가맹점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며, 결제 인프라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최근 간편결제사들이 빠르게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현장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POS와 유통 데이터에 기반한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반면 카드사들은 수십 년간 이러한 데이터 기반 서비스에 미흡했고, 현장과의 거리감만 커졌다.

또한 VISA MasterCard의 로열티 문제로 카드사들이 EMV인증을 받지 않아 해외카드와 애플페이의 국내 사용률이 다른 나라보다 낮은 것도 현행 카드 결제 프로세스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의 선진 사례를 본받아 카드사는 본연의 브랜드 경쟁에 집중하고, PG·VAN을 매입사화하여 서비스 경쟁을 촉진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언한다.

과거 블로터 보도에 따르면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3당사자제에선 카드사가 회원과 가맹점과 동시 계약하는 구조인데 연회비와 수수료율을 높일 때 회원의 이탈 가능성이 높은 반면 가맹점은 그렇지 않다”며 “3당사자제는 카드사가 회원에게 부과해야 할 비용을 가맹점에게 전가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급결제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결제 수단의 발전으로 비대면 및 온라인 결제가 다각화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PG사의 매입사화를 중심으로 한 지급결제 프로세스의 근본적인 재설계를 고민해 봐야 한다”며 “가맹점에는 서비스 경쟁을 통한 혜택을, 카드사에는 글로벌화의 기회를 주는 구조적 개편이야말로 진정한 디지털 금융 선진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