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모든 절차가 이뤄지는 만큼 영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향후 5~6년은 지나야 어느 정도 성공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겁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디지털보험사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출범 초기 시절이던 2013년 회사의 흑자 전환 시기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디지털 생명보험사 설립은 국내에서도 첫 사례였던 만큼 섣부른 낙관에 대한 경계감이 기저에 깔려 있는 듯한 발언이었다.
당시 신창재 회장은 최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했지만, 그의 예상도 결국 낙관론 아니냐는 지적을 받게 됐다. 2013년 설립된 교보라이프플래닛이 5~6년은 고사하고 출범 이후 10년이 넘도록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체질 개선이 요원한 상황이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교보라이프플래닛은 지난해 256억원의 적자를 냈다. 2023년 240억원에 비해 손실 폭이 커졌다. 출범 직후 단 한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하면서 누적된 적자만 2037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적자 폭이 커진 배경에는 본업 매출이 크게 감소한 데 있다. 2023년 255억원이던 보험영업 수익은 지난해 198억원으로 22.4% 감소했다. 그나마 고객 이탈이 줄어들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지난해 교보라이프의 13회차 보험계약유지율은 97.2%로 2023년 64.9%에서 크게 증가했다.
시장은 단기적으로 라이프플래닛의 흑자 전환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 사업 부진이 디지털보험사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해서다.
디지털보험사는 일반 보험사와 달리 전체 계약건수와 수입보험료의 90% 이상을 사이버마케팅(CM) 채널(통신수단 전화, 우편, 인터넷 등)을 이용해 모집해야 한다.
더군다나 생명보험은 손해보험에 비해 소비자의 가입 유인이 적다. 수십개 특약을 고객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선택해야하는데, 전문가 도움 없이 일반 소비자가 가입하기 어렵다. 설계사의 대면영업이 중요한데, 이를 비대면으로 극복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생보사들이 대면영업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데에는 이런 요인이 적지 않다. 지난해 전체 신계약 중 CM 채널이 차지하는 신계약 비중은 2.28%에 불과한데, 이것도 전년 2.5% 대비 하락한 수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손해보험에 비해 생명보험은 여전히 종신보험, 정기보험이 주력 상품이라 소비자 가입유인이 적은 것이 사실”이라며 “전체 보험의 90% 이상을 설계사 도움없이 비대면으로 판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적자 불구 대규모 자금 수혈
라이프플래닛이 적자를 지속하고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모회사 교보생명 지원 덕이다. 실제 교보생명은 2013년 최초 설립 자본금 238억원 출자 이후 7번의 유상증자를 통해 교보라이프에 총 3650억원의 자금을 수혈했다.
신창재 회장은 보험의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보장한다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면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생보시장에 라이프플래닛을 첨병으로 내세운 것도 이같은 이유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신 회장 경영철학에 따라 차남 신중현 씨가 라이프플래닛 디지털전략실장을 역임하며 경영 수업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모기업이 지원에 나선 것이라는 게 업계 진단이다.
신중현 실장은 1983년생으로 일본 SBI금융그룹 계열사인 인터넷 전문은행 ‘SBI스미신넷뱅크’, ‘SBI손해보험’ 등에서 전략·경영기획 업무 등을 역임했다. 현재 디지털 플랫폼 강화를 비롯해 데이터·상품·자본 제휴 등 회사의 핵심 디지털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신중현 실장은 지난해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 주최 국제 콘퍼런스에 연사로 참여해 회사의 기술 전략과 비전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경영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다.
업계는 자회사 적자가 지속되더라도 교보생명의 지원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미 본사로부터의 수천억원의 자금이 투입된 것과 아울러 향후 경영승계 문제가 맞물려 있어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라이프플래닛이 아직 이렇다 할 경영성과가 내지 못했지만, 교보생명이 자금 지원을 중단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라며 “단순 계열사 부진으로 치부하기에는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 뿌리 깊게 반영된 사업”이라고 했다.
IT조선 전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