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제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노란봉투법이란 이름은 지난 2014년 법원이 쌍용자동차 파업에 참가한 노조원들에게 47억원을 사측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노란색 봉투에 성금을 넣어 지원했던 데 착안해 붙은 별칭이다. 이 법은 ▲사용자의 범위 확대 ▲노동쟁의의 범위 확대 ▲사용자의 손해배상 요구에 대한 증명 책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확고하게 찬성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달 18일 진행된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노란봉투법은 대법원이 판례로 이미 필요성을 인정한 법안이고 국제노동기구도 다 인정하고 있다. 당연히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노란봉투법은 작년에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자 민주당의 박홍배 의원과 김태선 의원은 지난 2월과 3월에 다시 발의했다. 이용우 의원도 재발의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다. 국회 171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바로 시행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기존 노동조합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 계약 체결의 당사자로 규정하지만, 노란봉투법은 ‘근로 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 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넓혔다.
기존 노동조합법에서는 하청업체 근로자는 자신이 소속된 회사와 교섭할 수 있으나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원청업체를 상대로도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삼성전자(005930), 현대차(005380) 하청업체 노조가 삼성전자, 현대차와 직접 교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700곳 넘는 1차 협력사를 두고 있으며, 현대차는 1차 협력사만 350여 곳이다. 2차, 3차까지 더하면 수천 개에 달한다. 조선업계 협력사 수도 1000여 곳에 달한다.
노동쟁의의 범위도 ‘근로 조건 결정’에서 ‘근로 조건’으로 바뀐다. 현행법에서 노동쟁의는 근로 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으로 한정되는데 이를 ‘이익분쟁’이라 한다. 반면 이미 결정된 근로 조건에 대해 발생하는 분쟁은 ‘권리분쟁’이라 불린다. 노란봉투법에서 ‘결정’이란 단어를 삭제하면 파업의 허용 범위가 이익분쟁을 넘어 권리분쟁으로 확대된다.
법조계에서는 이 경우 노조가 근로 조건을 문제 삼아 사용자의 고유 권한에 대해서도 쟁의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채용이나 정리해고는 물론 해외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사안에도 노조가 반대해 파업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올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기업은 비상이 걸릴 수 있다.
파업이 발생해도 기업의 대응은 무력해질 수 있다. 불법 파업에 대해 사용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한 요구 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파업은 집단적 쟁의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의 역할을 사용자나 외부에서는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행법은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조의 수뇌부와 간부, 조합원 등의 행위에 대해 연대 책임을 인정하고 사용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에서는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각 배상 의무자의 개별적인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불법 파업으로 피해를 입은 사용자는 각 개별 근로자가 어떤 불법 행위를 했는지 증명해야 한다. 노조가 복면을 쓰고 불법 파업을 벌이면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해진다.
여기에 올해 발의되거나 발의가 예정된 법안들은 기존 발의된 노란봉투법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김태선 의원 발의안은 배상의무자의 재정 상황과 지급 능력 등을 고려해 배상액을 면제하거나 줄일 수 있도록 했고, 사용자의 불법 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배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조항도 들어갔다. 이용우 의원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등에 대한 단결권을 보장하는 내용 등을 추가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재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기업의 경영 활동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한다. 윤희숙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은 지난달 28일 “노란봉투법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보다 훨씬 잔인하다. 우리 경제의 생태계를 완전히 망가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영진의 의사 결정까지 노조의 간섭을 받게 되면 제대로 된 기업 활동이 가능할 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