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청진조선소에서 5000톤(t)급 신형 구축함을 물에 띄우려다 실패한 북한이 한 달 내 원상 복구를 추진하고 있으나 외부 도움 없이는 넘어진 배를 똑바로 세우는 과정부터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옆으로 누운 배를 세우고, 육지로 끌어올리려면 기중기 격인 해상 크레인이 필요하다. 낙후된 북한 조선소 환경을 고려하면 이런 장비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진수식(건조한 배를 물에 띄우는 행사)에서 체면을 구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다음 달 핵심 간부가 모이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전까지 신형 구축함을 원상 복구하라고 명령했다. 국내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해상 크레인 확보 여부에 따라 수리 기간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진수식에서 파손된 북한 신형 5000t급 구축함. 함수는 육지에, 함미는 물에 있는 채로 파란색 방수포가 둘러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 비영리 안보연구기관 오픈소스센터(OSC) 엑스(X) 캡처

26일 북한 노동신문은 청진조선소에서 발생한 구축함 진수 사고와 관련해 책임자들이 줄줄이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최고위급 간부인 리형선 당 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 부부장에 이어 김용학 행정부 지배인, 홍길호 청진조선소 지배인, 한경학 선체조립직장 직장장, 강정철 청진조선소 기사장 등이 구속됐다.

북한이 만든 5000t급 구축함은 지난 21일 청진조선소에서 물에 띄우는 과정에서 선체 일부가 바다에 빠지고 파손됐다.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 국가의 존위와 자존심을 한순간에 추락시킨 것”이라며 관련자 처벌과 선체 복원을 지시했다. 복원 기한은 6월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전으로 못을 박았다.

국내 전문가들은 수리 기한이 빠듯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해상 크레인이 있어야 배를 세우고 육지로 올려 수리할 수 있다. 청진, 남포, 원산 등 북한의 주요 조선소는 설비가 낙후한 데다 최신 장비 도입도 어렵다고 한다. 사고 선박 사진에서도 해상 크레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배를 다시 육상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이렇게 넘어지면 해상 크레인으로 올리는 수밖에 없다. ‘슬립웨이(slipway·배를 만들거나 수리할 때 올려놓는 대)’ 방식으로 배를 띄운 걸 보면 조선소 자본, 인프라가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상 크레인이 없다면 중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에서 빌려오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2014년 미국 위스콘신주에 있는 메노미니강에서 LSC 7호가 슬립웨이 방식으로 진수되고 있다./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유튜브 캡처

북한은 육상에서 배를 건조하고, 경사면 위에서 미끄러지게 해 바다에 띄우는 슬립웨이 방식을 이용하다가 사고가 났다. 슬립웨이는 대형 선박을 진수하기 어렵고, 배가 뒤집히거나 손상될 수 있어 국내 조선사들은 1990년대 이후로 쓰지 않는 방식이다.

국내 조선소는 육상 독(Dock·선박 건조장)에서 건조를 마치고 물을 채워 진수하는 ‘드라이 독’, 육상·부유식 독 안에서 건조한 배를 부유식 독으로 옮긴 다음 물을 채워 진수하는 ‘플로팅 독’ 방식을 활용한다. 슬립웨이 방식과 비교하면 설비 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대규모 공간, 기술력 등이 필요하다.

이번 구축함 손상으로 북한은 막대한 군사 자산을 날리게 됐다. 그간 북한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병력, 재래식 무기 등을 제공하고 러시아로부터 미사일 시스템, 전자전 장비 등을 지급받는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지난달 25일 남포조선소에서 진수에 성공한 5000t급 신형 다목적 구축함 ‘최현함’에는 4면 위상배열레이더, 초음속 순항미사일, 127㎜ 함상 자동포 등이 관측됐다. 그간 북한 함정에서 볼 수 없었던 기술이고 러시아의 카라쿠르트급 함정에 탑재된 기술과 유사해 러시아의 군사 기술 지원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