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CATL이 20일 홍콩 증시에 상장됐다. CATL은 상장으로 조달한 대규모 자금을 해외 공장 건설과 연구·개발(R&D)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최근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실적 부진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상황이라 한국과 중국 배터리 기업의 경쟁력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금융 시장에 따르면 CATL은 이날 오전 10시 30분(한국 시각)부터 홍콩증권거래소에서 거래가 시작됐다. 지난 2018년 6월 중국 선전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데 이어 약 7년 만에 세계 주요 시장 중 한 곳인 홍콩 증시에 입성한 것이다.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의 쩡위췬 회장(왼쪽에서 여섯번째)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이 20일 CATL이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후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CATL의 주식 발행 규모는 총 1억1790만주, 공모가는 주당 263홍콩달러(약 4만7000원)다. CATL은 이번 상장으로 최대 53억달러(약 7조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게 됐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CATL이 홍콩 증시 상장으로 세계 1위 제조사의 입지를 더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CATL 등 중국 배터리 기업은 아직 매출의 대부분을 자국 시장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번에 조달한 자금으로 해외 공장을 늘리면 글로벌 시장 내 점유율이 늘어날 수 있다.

CATL은 추가로 확충한 자본을 주로 헝가리 공장을 건설하는 데 쓸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중국과 오랜 기간 정치적으로 대립해 오고 있어 중국 배터리 업체의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남아시아와 중남미는 소비력이 낮아 시장 규모가 커지는 데 한계가 있다. CATL은 헝가리에 공장을 지어 유럽 내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CATL이 헝가리 공장을 신설하고 R&D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할 경우 국내 업체들과의 글로벌 점유율 차이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지난 2월 기준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 38.2%로 1위를 기록 중이다. 2위는 16.9%인 중국 BYD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9.8%)과 SK온(3.9%), 삼성SDI(006400)(3.2%) 등 국내 업체의 점유율을 합쳐도 CATL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거듭된 실적 부진과 수익성 악화로 자금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의 올해 1분기말 기준 차입금 합산액은 약 49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말보다 7조원 넘게 늘어난 수치다.

SK온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 조지아주 공장 전경 / SK온

SK온의 경우 1분기 말 기준 차입금이 20조3907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조7910억원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조2220억원 늘어난 17조6126억원이었다. 삼성SDI는 11조6155억원으로 377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현재 회사채 발행이나 외부 차입금 조달 등 자금을 확충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차입금은 늘고 있지만, 가동률은 떨어지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배터리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출범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기차 대신 내연기관차 시장을 살리겠다는 입장이라 전기차 시장의 성장 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평균 가동률은 지난 2023년 69.3%에서 지난해 57.8%, 올해 1분기 51.1%로 떨어졌다. 삼성SDI는 소형 전지 가동률이 지난해 58%에서 올해 1분기 32%로 하락했다. SK온 역시 가동률이 2023년 87.7%에서 지난해 43.6%로 낮아졌고, 올해 1분기에도 비슷한 수준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자금난이 지속되면 중국 기업과의 R&D 투자액 차이도 계속 벌어져 글로벌 시장에서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직접 환급제(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금액을 현금으로 직접 환급해 주는 제도) 도입 등을 통해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