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가 미래 먹거리로 내세운 스마트 조선소가 노동조합에 막혀 반쪽짜리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하려면 조선소 내 여러 각도로 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는데, 노조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감이 몰린 조선업계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작업장 내 카메라 설치가 노사 협의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화오션(042660)은 우선 미국 필리 조선소에 카메라를 달기로 했다. HD현대(267250)는 노사 간 소통을 통해 스마트 조선소에 필요한 카메라를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일러스트=챗GPT

2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3대 조선업체(HD한국조선해양(009540)·한화오션·삼성중공업(010140))는 최근 수년간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결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려면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스마트 조선소가 필요하다.

스마트 조선소의 핵심은 작업 과정을 개선하는 것이다. 모든 공정을 실시간 데이터로 수집한 뒤 불필요한 대기 시간, 중복 업무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선 작업장 곳곳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조선소의 크고 작은 블록의 위치, 재고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면 최적의 동선으로 옮겨 빠르게 조립할 수 있다.

국내 조선사는 작업장 내 폐쇄회로(CC)TV가 없다. CCTV 설치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직원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노조는 회사가 CCTV를 감시 수단으로 악용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데이터 수집을 위한 자동 스캔 카메라도 인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한화오션 제공

조선사는 다른 방안으로 작업장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수시로 드론을 띄워 작업장을 확인한다. HD현대중공업은 근로자가 개인 휴대 단말기(PDA)를 들고 다니면서 부품, 선박 공정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한다. 삼성중공업은 자동화 공정에 실시간 감지 센서 시스템을 활용한다.

업계에서는 미국에 스마트 조선소를 구축하는 게 더 쉬울 것으로 본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노조의 협상력이 낮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6월 인수한 미국 필리 조선소 내부에 안전, 보안 등을 이유로 카메라부터 설치하기로 했다. 현지 조선소 인수를 검토하는 다른 조선사도 비슷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행정부는 국내 조선업계와 협력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 16일 제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통상장관회의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대표는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 등과 만나 조선산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