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Chief Executive Officer), 록밴드 U2의 리더 보노. 이들은 강연 프로그램의 ‘원조’로 불리는 테드(TED) 무대에 올라 새로운 지식, 혁신적인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해당 강연은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돼 있어 누구나 볼 수 있다.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약자인 테드는 과거 소수를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열리는 콘퍼런스였다. 하지만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 테드 대표가 지난 2000년, 테드를 1400만 달러에 인수한 뒤 달라졌다. 2006년 6월 테드는 녹화된 강연 6편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반응은 뜨거웠고 3개월 만에 조회 수 100만 회를 돌파했다.
무료 공개 이후 유료 콘퍼런스의 인기도 높아졌다. 2007년 콘퍼런스 참가비를 6000달러로 인상했는데도 1500명이 참가하는 콘퍼런스 티켓이 1주일 만에 매진됐다. 이에 힘입어 테드는 그해 홈페이지를 재정비하고, 전 세계 시청자에게 모든 강연을 무료로 제공했다.
2025년 4월 기준 테드 홈페이지에는 강연 7088개가 올라와 있다. 매년 테드 강연은 30억회 이상 시청된다. 테드의 인기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테드 강연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돕는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과학자·기술자·사업가·예술가·디자이너 등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통찰력과 지혜를 무료로 접한다.
평소 ‘가치 있는 아이디어의 확산(ideas worth spreading)’을 내세우는 앤더슨 대표는 소수 엘리트의 지적 사교 모임을 무료로 전환한 동력에 대해 “비영리 재단을 세워 테드를 인수했고, 비영리 재단의 목적은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기에 강연을 공유할 의무가 있다”며 “테드의 철학은 큰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놀라워하는 것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한국원자력연차대회 40주년’ 기조연설을 위해 한국을 찾은 앤더슨 대표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15년 동안 컴퓨터 잡지 출판사를 운영하다 TED를 인수한 이유는.
“닷컴 버블이 터진 2001년, 15년 동안 키웠던 회사 가치가 95% 사라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른 곳을 찾고 싶었다. 내 삶에 큰 변화를 만들고 싶었고 사업보다 아이디어의 세계에 푹 빠지고 싶었다.”
─빌 게이츠와 같은 유명 인사도 강연료를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TED에서 강연하는 이유는 ‘나눔’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의 동기는 매우 미묘해서 그저 지식이라는 선물을 나누기 위해 연사로 나선다. 빌 게이츠조차 테드 강연을 통해 새로운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좋은 지식이 공유되면 청중도, 연사도, 세상도 혜택을 받는다.”
─테드는 비영리재단인 샤플링재단이 운영하는 만큼 수익성에 방점을 맞추기 힘들 듯하다.
“테드 운영비는 콘퍼런스 참가비, 광고, 기업의 스폰서십 외에 전 세계 수만 명의 사람들로부터 받는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테드 정규직 직원은 약 20명이고 비영리 재단이기 때문에 돈을 벌 필요는 없지만, 감당해야 할 부분은 있다. 다행히 우리는 수입과 지출을 맞출 방법을 찾고 있다.”
─TED가 2020년 처음으로 강연을 유튜브로 중계했을 때 주제가 ‘기후 변화’였다. 기후 변화에 관심이 많나.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2006년 테드에서 기후 변화를 주제로 강연했다. 우리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이후 몇 년 동안 기후 문제를 다룬 연사가 점점 더 많아졌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도록 투자하고 사업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난 2월 TED 대표에서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는 기후 변화에 전념할 건가.
“테드는 비영리 재단이 운영하기 때문에 20년 넘게 무급으로 일했다. 동시에 투자자로 활동했다. 앞으로는 기후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미국의 용융염 원자로 스타트업인 토르콘(Thorcon)과 같은 회사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예정이다. 테드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테드와 연결돼 있고 싶다. 새 경영진이 원한다면 자문, 공동 진행자로 계속 활동할 생각이다.”
─새로운 TED 대표 선정의 기준은.
“콘퍼런스를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하며, 강연을 무료로 공유하는 방침을 유지해야 한다. 또 테드를 특정 정치적 관점을 확산하기 위한 통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70개 정도의 회사와 개인이 연락해 왔다. 12개 이상의 회사를 대상으로 매우 진지하게 검토 중이다. (테드 대표 선정에) 6주 정도 걸릴 듯하다. 한여름에 발표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