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중국산 선박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음에도 중국 조선사로 컨테이너선 발주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선박의 가격이 워낙 낮아 수수료를 납부해도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은 다시 한국을 제치고 세계 선박 수주량 1위에 올랐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 기관 클라크슨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4월 전 세계 선박 수주량 364만CGT(Compensated Gross Tonnage·선박의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한 무게 단위) 가운데 중국이 251만CGT(69%)를 차지했다. 한국은 62만CGT(17%)로 2위였다.
선박 수로는 지난달 전체 신규 수주 75척 중 중국이 51척, 한국이 15척을 따냈다. 앞서 3월엔 한국이 91만CGT(45%)를 수주해 중국(80만CGT·40%)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캐나다 선사 시스팬(Seaspan)은 지난달 29일 중국 상하이외고교조선(SWS·Shanghai Waigaoqiao Shipbuilding)에 1만1400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6척을 발주했다. 황산화물 저감 장치 스크러버를 장착한 친환경 선박이다. 2027~2028년 인도할 예정이다. 대금은 중국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했다. 시스팬은 현재 선박 약 200척(230만TEU)을 운영하는 주요 선사다.
같은 날 중국 국영 중국원양해운그룹(CHINA COSCO SHIPPING CORPORATION) 산하 컨테이너 물류 기업 OOCL(Orient Overseas Container Line)도 1만8500TEU급 컨테이너선 14척을 발주했다. 메탄올 이중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으로, 계약 규모는 30억달러(약 4조2000억원)다. 중국원양해운그룹이 소유한 조선소 두 곳이 나눠서 건조해 2028~2029년 인도할 예정이다.
지난달 중국 조선업계의 수주 성과는 트럼프 정부의 중국 선박 배제 움직임이 본격화한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 주목된다. 미국무역대표부(USTR·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는 지난달 17일 중국이 제조하고 소유한 선박엔 오는 10월 14일부터 순톤(net ton·907.2kg)당 50달러의 입항 수수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수수료는 앞으로 3년간 매년 30달러씩 늘어난다. 또 중국이 제조하고 다른 나라 기업이 소유한 선박에도 순톤당 18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3년간 매년 5달러씩 높이기로 했다.
USTR은 지난 2월 공개한 미국 입항 수수료 초안에선 중국산 선박에 최대 150만달러(약 21억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혔으나, 해운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제재 수위를 낮췄다. 아직 컨테이너선 한 척당 수수료 상한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의 중국 선박 규제는 중국의 조선·해운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미국산 선박 판매를 늘리려는 목적이 크다. 중국은 지난해 전 세계 선박 신규 발주량의 74%를 가져갔고, 건조 완료 물량의 56%를 차지했다. 저렴한 인건비와 원자재 공급망 우위로 중국 조선사들은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선 중국산 컨테이너선 가격이 미국산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미·중 관세 협상 진전에 따라 미국의 입항료 정책이 바뀔 수도 있어 최종 부과 전까지는 중국산 선박 발주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언제든 정책 기조를 바꿀 수 있어 입항 수수료가 영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중국산 선박을 많이 보유했거나 발주 잔량이 많은 해외 선사는 정책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중국 선박의 가격적 매력을 놓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