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문명에서 원자력 에너지는 중차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원자력은 한 국가, 한 회사의 기술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공유하는 기술이기에 안전하고, 장기적으로 쓸 수 있도록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2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원자력연차대회 40주년 행사에서 첫 번째 세션 좌장을 맡은 김범년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첫 세션 주제는 ’60년을 넘어서, 가동 원전의 새 역할‘(Beyond 60, Towards World Class Operational Excellence)이었다. 보통 원전은 설계·건설·운영·유지 보수까지 60년 정도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최근 원자력계에서는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해 설계 수명을 늘리고, 유연하게 사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김범년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가 2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원자력연차대회 40주년 행사에서 첫 번째 세션 주제를 소개하고 있다./이인아 기자

이번 세션에서는 국내외 원자력 전문가들이 모여 원전을 안전하게 계속 쓸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가장 먼저 발표를 맡은 김신환 국제원자력기구(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원전설계부문 책임은 원전을 새로 짓는 것보다 계속 운전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31개 나라에서 원전으로 377GW(기가와트)를 생산하며 전체 전력의 10%를 담당하고 있다. 또 15개 나라에서 61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 새로 짓는 와중에도 기존 원전은 계속 돌아가야 한다. 안전하고 저렴한 에너지인 원전이 멈추면 저탄소 전환을 잃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전 세계 원전이 안전하게 계속 운전할 수 있도록 IAEA는 기술문서 발간, 국제 협력 네트워크 도모, 역량 강화를 위한 서비스, 규제 기관과 협력 등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차대회 40주년 행사에서 세션 참가자들이 각자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신환 국제원자력기구(IAEA) 원전설계부문 책임, 개리 로즈(Gary Rose) 캔두 에너지(Candu Energy) 대표, 마쓰이 히데키(Masui Hideki) 일본원자력산업협회(JAIF) 대표, 타티아나 샐니코바(Tatiana Salnikova) 프라마톰(Framatome) 수석 매니저, 윤봉요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계속운전연구소 소장, 최재돈 한국원자력연료 기술본부장. /이인아 기자

개리 로즈(Gary Rose) 캔두 에너지(Candu Energy) 대표는 원전 설계 수명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교체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로즈 대표는 “캔두 원전 노형은 원자로 압력관을 교체하면 30년 이상 안정적으로 쓸 수 있다. 교체 기술은 장점이 많은데, 데이터가 쌓이면서 비용도 저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쓰이 히데키(Masui Hideki) 일본원자력산업협회(JAIF·Japan Atomic Industrial Forum)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달라진 일본의 원전 산업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54개 중 21개가 영구 정지됐다.

그는 “일본의 원전 정책은 다시 친원전으로 바뀌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의존도를 낮추려고 했지만,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다시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존 원전을 다시 가동하고 새 원전을 짓는 계획도 발표됐다”고 했다.

타티아나 샐니코바(Tatiana Salnikova) 프라마톰(Framatome) 수석 매니저는 프랑스에서 진행 중인 원전 유연 운전에 대해 설명했다. 보통 원전은 일정한 출력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는데, 유연 운전은 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량을 조정하며 운영하는 걸 의미한다.

그는 “재생 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력 수요가 낮아질 때는 원전의 유연 운전이 필요하다. 유연 운전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낮은 출력에서도 안정적으로 운전을 최적화하는 게 가능하다. 다른 나라도 유연 운전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가동 원전을 계속 운전하려면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봉요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계속운전연구소 소장은 “현재 원전은 10년 주기로 계속 운전 승인을 받고 있는데 이 기간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 같은 노형에서 안전성을 확보했다면, 해당 노형의 원전을 묶어서 인허가를 내주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재돈 한국원자력연료 기술본부장은 “미국은 제도 개선을 통해 60~80년까지 운영하는 발전소도 생겼다. 우리나라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