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제 정세에 불확실성이 커지자 한국 기업들이 로비 활동을 늘리고 있다.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도 미국 로비 업체와 계약해 관계 형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267260)은 글로벌 로펌 스콰이어 샌더스(Squire Patton Boggs)와 12만달러 규모의 자문 계약을 맺었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미국 관세 정책 변화에 따른 현지 동향 파악 및 대응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LIG넥스원(079550)도 글로벌 로펌 넬슨 멀린스(Nelson Mullins)와 로비 활동 계약을 맺었다. 지난 7일에는 구본상 LIG 회장이 미국에서 열린 한미동맹 행사에 참여했다. LIG넥스원은 지대함(地對艦·지상에서 수면의 함선으로 향하는) 유도무기 비궁(Poniard)의 미국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인호(왼쪽) 한국무역협회 부회장과 돈바이어(오른쪽) 美 하원의원이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미 통상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한국무역협회 제공

정부 부처도 현지 로비 업체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로펌 아놀드앤포터(Arnold & Porter), 홀랜드앤나이트(Holland & Knight)와 로비 계약을 맺은 상태다. 산업부 관계자는 “통상부터 기업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각종 조치, 입법부 동향 등에 포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 외에도 많은 부처가 현지 네트워킹에 로펌이나 로비펌을 활용한다”고 했다.

동국제강(460860)그룹 미국 법인 동국인터내셔널은 지난달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 이어 휴스턴에 새로 사무실을 열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동부와 서부에 이어 주요 고객사가 있는 남부로 영역을 넓힌 것으로 통상 환경에 맞춤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미국 연구소와 계약을 맺고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047810)(KA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도 필요에 따라 현지 컨설팅 기업의 도움을 받는다.

지난 2월 최상목(앞 줄 왼쪽 다섯번째)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장·차관, 기업대표 등 22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미 민간 경제사절단 만찬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한국무역협회는 현지 로비 업체 토머스캐피털파트너스(Thomas Capital Partners)와 계약을 맺고 있다. 7만개가 넘는 협회 회원사의 현지 투자 및 수출입 등 경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협회 관계자는 “대기업은 대관 담당이 따로 있지만 중견·중소 기업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로비 업체와 계약하는 것”이라고 했다.

로비 업체를 이용했던 기업은 로비의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개별 기업이 연락하면 답변을 받기 힘들지만, 로비 업체를 통하면 예외 규정을 만드는 데 접근할 수 있는 미국 의원에 호소할 수 있다”며 “정보를 미리 알면 대응이 빠르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미국 의원들과 연방·주 정부 인사 등을 면담해 산업·통상·에너지 분야에서 양국 협력을 논의했다. /뉴스1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삼성, SK(034730), 현대차(005380) 등 한국 기업의 작년 대미 로비 금액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로비스트를 찾고 있기 때문에 미국 로비 업계는 호황일 것”이라며 “한국은 로비 활동이 허용되지 않지만 미국, 중국, 유럽 등 해외에 진출할 때 활용하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