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의 무역장벽으로 절충교역을 지적한 가운데, 방산 업계에서는 절충교역이 없어지면 중견·중소업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를 통해 한국 정부가 국방 분야의 절충교역을 통해 한국 기술과 제품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지적했다. 절충교역은 해외에서 큰 규모의 무기나 군수품 등을 구매할 때 반대급부로 계약 상대방에게 기술 이전이나 국산 제품을 사줄 것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방위사업법은 1000만달러(약 147억원) 이상의 군수품을 구매할 때 절충교역을 추진하도록 돼 있다. 절충교역 비율은 방위사업법 예규에 따라 경쟁 여건이 형성된 경우 기본계약금의 50% 이상, 경쟁 여건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엔 30% 이상을 적용해야 한다. 이 규정에 따라 한국 담당자는 해외에서 무기를 구매할 때 상대국에 기술이전이나 국내 제품 구매를 요청해야 하는데, USTR은 이를 무역장벽으로 본 것이다.
한국이 미국 무기를 구매한 뒤 절충교역에 따라 미국의 이행이 남은 규모는 약 58억달러(8조5400억원) 수준이다. 이 금액만큼 미국은 한국산 제품을 사야 한다.
절충교역이 폐지되면 부품을 공급하거나 기술이전 생산을 하는 중견·중소기업은 타격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술이전 생산은 외국 방산기업의 제품을 국내에서 만드는 것을 말한다. 현재 한 국내 업체는 미국산 드론을 국내로 들여올 계획인데, 절충교역이 폐지되면 기술이전 생산이 막힐 수 있다. 방사청은 지난달 11일 미국 록히드마틴을 대상으로 절충교역 시 구매 가능한 품목을 알리는 자리를 가졌는데, 100여개의 중소기업이 참여해 드론과 반도체 센서 등을 소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절충교역이 사라지면 중소기업의 제품을 소개할 기회가 사라진다”며 “절충교역으로 수출 기회를 얻은 기업에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도 지난 2005년 미국 보잉사가 만드는 F-15K의 전방 동체와 날개를 공급한 바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보잉의 F-15를 구매하면서 이뤄진 절충교역으로 이뤄진 것이다. 현대차(005380)가 포니를 처음 수출한 것도 절충교역 덕분이었다. 한국은 1984년 캐나다로부터 항공관제용 레이더를 구매하면서 절충교역을 요구했고, 캐나다는 현대차 포니-2를 1000대 구매했다.
미국이 절충교역 폐지를 요구하면 유럽산 무기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산 무기체계의 주요 고객인데, 유럽 국가가 더 큰 규모의 절충교역을 제공하면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절충교역이 폐지되면 미국산 무기 가격이 하락할 수 있어 국산 무기체계의 소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군 관계자는 “(절충교역이 폐지되면) 방산업계에 악영향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방사청은 추후 미국 정부와 상호 국방조달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절충교역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