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다음달부터 모든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주요 자동차 생산국 가운데 한국이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현대차(005380)·기아(000270)의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은 도요타 등 해외 경쟁사보다 낮다. 국내에서 미국 판매용 차를 만드는 한국GM의 철수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다음달 2일부터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자동차 관세는 영구적이다. 100% 그렇다”라고 했다.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미국 시장 합산 판매량은 170만8293대였다. 현대차는 91만1805대, 기아는 79만6488대를 각각 팔았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생산한 차는 총 71만5732대(현대차 36만1632대·기아 35만4100대)로 전체 판매 차량의 41.9%였다. 나머지는 국내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돼 관세 부과 대상이 된다.
국내 생산 차량 중 상당수는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모델이다. 지난해 현대차 모델 중 미국 판매 1위를 기록한 투싼의 경우 하이브리드차를 국내 울산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한다. 미국 판매 2위 모델인 아반떼도 울산공장에서 만든다.
해외 경쟁사들 역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현대차·기아에 비해서는 상황이 다소 나은 편이다. 주요 완성차 기업들은 이미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절반 이상을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S&P 글로벌 모빌리티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도요타의 미국 현지 생산 비율은 전체 미국 판매 차량의 56%를 차지했다. 도요타는 미국에서 완성차 5곳, 부품 5곳 등 총 10곳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다른 일본 브랜드인 혼다와 닛산의 미국 생산 비율은 60%가 넘는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 회사의 자국 내 생산 비율도 60%가 넘는다. GM을 포함한 미국 업체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멕시코 등 해외에 여러 공장을 뒀지만, 여전히 많은 물량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또 해외 생산 물량을 미국으로 옮기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미국 생산 비율도 60% 수준이다.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투자설명회에서 “생산 라인을 재배치하는 것은 최소 2년에서 최대 4년이 걸린다. 최대한 시기를 앞당겨 미국 생산 비율을 2027년까지 70% 수준으로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0월 미국 조지아주에 연간 30만대의 친환경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건설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의 미국 생산량은 연간 100만대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최근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전기차 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있어 단기간에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가동에 따른 실익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 외에 GM의 한국 철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GM 한국사업장(한국GM)은 현재 국내 생산량의 80% 이상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그의 임기 동안 자동차 관세가 유지되면 GM은 한국에서 공장을 계속 가동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GM의 한국 철수가 현실화되면 국내 부품 업계 역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GM 협력사 단체인 협신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GM의 1차 협력사는 276곳이다. 2, 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약 3000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상호 관세의 경우 국가별 협상을 통해 조정될 수 있지만, 자동차는 품목별 관세에 속해 금방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작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공동화(空洞化)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