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명가’ DI동일(001530)이 핵심 자회사 동일알루미늄을 흡수합병하며 본격적인 사업 구조 개편에 나섰다. 지난해 불거진 지배구조 문제 이후 감사 겸직 해소, 자사주 소각 등 주주 친화 정책을 연이어 발표한 가운데, 이번엔 알짜 자회사를 흡수해 중장기 주주환원과 사업 효율화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섬유 명가’서 이차전지 소재기업으로…계열사 11개 거느린 중견기업
DI동일은 1955년 9월 고 서정익 회장이 설립한 동양방적을 모태로 한다. 지난 1960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의 성장을 이끈 섬유산업 대표기업 중 하나다. 1964년에는 코스피에 16번째로 상장하며 정통 제조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섬유 사업에 집중하던 DI동일은 이후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이차전지용 알루미늄 포일과 기체 여과기, 환경오염 방지 설비 등을 생산하는 플랜트 부문으로 외연을 넓혔다. 소재와 친환경 설비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DI동일은 2024년 말 기준 11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동일그룹의 모회사다. 대부분 자회사에 대해 100%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동일알루미늄, 동일씨앤이, 디아이비즈, PT 동일인도네시아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도 이차전지용 알루미늄박을 생산하는 동일알루미늄은 그룹 내 핵심 자회사로 꼽힌다. 2024년 기준 매출액은 1910억원, 영업이익은 52억원이다. 동일알루미늄은 산하에 디아이시스템을 두고 있으며, DI동일과 함께 DIA알루미늄 인디아를 공동 지배하고 있다.
◇3세 경영 본격화했지만, 서태원 대표와 총수 일가 지배력 낮아
현재 DI동일은 서태원 대표이사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3세 경영 체제로 운영 중이다. 2019년 오너 2세인 서민석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아들인 서 대표가 입사 11년 만에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그러나 실질적인 경영권은 여전히 부친인 서 회장에게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서 대표가 보유한 지분은 1.98%로 서 회장 지분율 8.18%의 4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DI동일의 최대 주주인 정헌재단(12.75%)도 서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다.
총수 일가 전체의 지분율도 24.77%에 그쳐 독자적인 지배력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특수관계인인 정헌재단(12.75%), 서 회장(8.18), 여경주 여사(1.32), 서 대표(1.98) 등 10명의 지분을 모두 포함해도 의결권 확보에 부족한 상황이다.
반면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소액주주의 비중은 높다. 기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액주주들의 지분은 3.2%에 달하고,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가 15%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소액주주에 우호적인 국민연금도 지분 5.18%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주요 경영 사항은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의 동의 없이는 추진이 어렵다. 특히 정관 변경, 합병, 감사 선임 등 주요 안건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대상이다. 이 경우 출석 주주의 3분의 2(약 66.7%) 이상의 동의가 필요해, 총수 일가 지분만으로는 결의할 수 없다.
◇지배구조 논란에 ‘주주환원책’ 쏟아낸 DI동일
이러한 상황에서 DI동일이 최대 주주인 정헌재단에 회사 자금 96억원을 대여하면서 지배구조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대여금 승인 과정에서 DI동일의 내부 감사가 정헌재단 사무국장을 겸직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내부 견제 기능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신민석 전 라데팡스파트너스 부대표 등 소액주주 8명은 감사위원 교체를 요구하며 임시주주총회를 청구했다. 이들은 보유 지분 3.2%를 바탕으로 감사 해임과 새로운 감사 추대를 추진했으나,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인 67% 찬성에는 미치지 못해 부결됐다. 다만 국민연금과 외국인 주주들이 소액주주 편에 서면서 찬성률은 60%에 달해 주목받았다.
지배구조 논란 이후 DI동일은 소액주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지배구조 개선책을 내놨다. 우선 DI동일은 정헌재단과 회사와의 겸직을 해소하겠다고 공시했다. 여기에 외부 전문 기관의 자문을 받아 내부회계관리 제도를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DI동일은 동시에 주주 환원책도 제시했다. 주식 1주당 0.05주를 배정하는 주식 배당을 발표했다. 여기에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2725억원 규모의 자사주(646만3422주) 소각을 결정했다.
지난 3월 10일에는 중장기 목표로 ‘주주 친화와 투명경영’을 제시하며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유휴부지를 활용해 재무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DI동일은 동일알루미늄을 1대 1.19의 비율로 흡수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오는 8월 1일 합병이 완료되면 DI동일의 계열사는 10개로 줄어들 전망이다. 회사 측은 “중복 조직을 제거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소액주주들은 이번 합병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그동안 DI동일은 담보된 실적 때문에 꾸준히 기업공개(IPO) 논의가 있어왔다. 이때마다 발목을 잡았던 건 ‘알짜 자회사’ 동일알루미늄의 이중 상장 가능성이었다. 주주들은 이번 흡수합병을 통해 IPO에도 기업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 소액주주 환원책 ‘긍정’…“사업 성장하는 방향이어야”
전문가들은 소액주주의 지분이 높은 만큼, 주주 환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단기적인 배당보다는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식의 주주 환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DI동일의 대주주 지분이 20% 수준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낮다”며 “소액주주가 전체 지분의 약 80%를 보유한 만큼,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회사를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 기회를 찾았다면 과감히 투자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그렇지 않다면 배당 등을 통해 주주에게 수익을 환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동일알루미늄 흡수합병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교수는 “100% 자회사인 경우, 향후 상장 추진 시 이중 상장 논란으로 모회사 주가가 하락할 수 있는데, 이번 합병은 그런 불확실성을 제거한 조치로 소액주주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알루미늄과 방직은 업종 간 연관성이 크지 않아, 시너지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