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제지(006740)가 2023년 인수한 영풍팩키지의 적자가 2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풍팩키지가 영풍제지에 빌린 100억원의 단기차입금 상환 시점이 다가오자, 영풍제지는 8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다시 수혈했다. 업계에서는 모회사가 실적 개선 없는 자회사의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풍제지 회사 홈페이지. /영풍제지 제공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영풍팩키지는 영풍제지에 2023년 5월 인수된 이후 줄곧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영풍팩키지는 2023년에 매출액 94억원, 영업손실 17억원, 2024년에는 매출액 107억원, 영업손실 29억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자회사의 실적 부진이 지속되자, 영풍제지는 영풍팩키지에 총 100억원의 단기자금을 빌려줬다. 단기차입금은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빚이다. 2024년 12월 기준 영풍제지로부터 100억원을 단기 차입 받은 영풍팩키지는 2025년 12월 내에 1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문제는 영풍팩키지가 100억원을 상환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2024년 말 기준 영풍팩키지의 자산은 181억원, 그 중 단기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은 27억원에 불과하다. 연간 순 현금 증가액도 1억5000만원에 그쳤으며, 영업과 투자활동에서는 오히려 현금이 빠져나갔다. 단기차입 유입으로 가까스로 흑자를 기록했을 뿐, 자체적인 상환 능력은 사실상 미비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풍제지가 오는 20일 영풍팩키지가 발행한 8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취득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발행회사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사채권으로, BW를 취득한 기업은 BW를 발행한 기업에 돈을 주고 이자와 신주를 인수할 권리를 받게 된다. 즉, 영풍팩키지가 발행한 BW를 영풍제지가 취득하게 되면, 80억원의 금액을 빌려주고 이자와 신주를 받을 권리를 받게 되는 셈이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점은 영풍제지가 BW를 취득한 방법이다. 영풍제지는 BW 취득을 ‘대여금으로 물상납입’ 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영풍팩키지에 빌려준 돈으로 BW 인수 금액을 대신하겠다는 의미다. 사실상 대여금을 BW로 바꿔서 만기를 연장한 셈이다.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모회사 입장에서는 자회사가 망하게 둘 수 없으니, 대여금을 줘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다만 회수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또 대여금을 빌려주는 것보다 BW로 차환을 통해서 부채 상환을 연장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풍제지 관계자는 “영풍팩키지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BW 인수도)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앞서 2023년 5월, 영풍제지는 골판지 제조업체인 태화피엔티(현 영풍팩키지)를 약 150억원에 인수했다. 태화피엔티는 2006년 설립된 중견 골판지 가공업체로, 하이트진로, 롯데알미늄 등에 골판지 완제품 박스를 공급해 왔다.

영풍제지는 이 회사를 인수해 원지 생산부터 골판지 가공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수직계열화’함으로써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인수 후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줄곧 적자만 내고 있다.

영풍팩키지를 연결 종속회사로 둔 영풍제지의 실적도 내림세다. 영풍제지는 2023년 연결 기준으로 전년 대비 21.6% 감소한 82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도 적자 전환해 29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24년에는 매출이 881억 원으로 소폭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138억 원으로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