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자재(시멘트·레미콘·골재·콘크리트 등) 사업을 영위하는 삼표그룹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난관을 맞았다.
검찰은 정도원(78) 삼표그룹 회장이 레미콘 원자재를 시세보다 비싸게 구매하는 방식으로 장남 정대현(48) 삼표그룹 부회장의 개인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26일에는 삼표산업 본사 등을 압수수색 했다.
삼표산업 지배를 받는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인 삼표시멘트(038500) 소액주주들은 “원자재를 비싼 값에 사주다가 이제 못하게 됐으니 회사 이익이 늘어날 수 있다”며 “회삿돈을 사익을 위해 썼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투자자는 “이미 삼표산업과 홍성원 전 대표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며 “배임·횡령 행위를 처벌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공정위 “삼표산업, 회장의 장남 회사 부당 지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8월 부당 지원 혐의로 삼표산업에 과징금 116억2000만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삼표산업을 고발했다.
삼표그룹 지주사인 삼표산업이 2016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정대현 부회장이 지분 71.95%를 가진 개인회사 ‘에스피네이처’에서만 레미콘 제조에 쓰이는 분체 전량을 구매하고, 비(非)계열사와 거래할 때보다 고가에 구매했다고 봤다.
공정위는 이 거래로 에스피네이처가 연간 영업이익의 5~9%에 해당하는 약 75억원의 부당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또 정대현 부회장이 부당이익을 활용해 삼표와 삼표산업의 유상증자에 참여, 지분율을 높이고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고 보고 있다.
◇2023년 ‘계열사’였던 삼표산업이 ‘지주사’로…정대현 영향력 확대
정도원 회장은 고령에 접어들자 1남 2녀 중 유일하게 그룹 경영에 참여하던 정대현 부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2023년 7월에는 정대현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도 단행했다. 당시 지주사 역할을 한 ㈜삼표를 삼표산업에 합병했다. 합병 비율(삼표 1.8742887주당 삼표산업 1주)에 따라 총 1053만3338주의 신주를 발행했다. 지배구조를 ‘총수 일가-삼표-삼표산업’에서 ‘총수 일가-삼표산업-계열사’로 바꾼 것이다.
기존 지주사였던 ㈜삼표에서 정대현 부회장 지분율은 에스피네이처를 포함해도 30.77%에 머물렀다. 정도원 회장(65.99%)과의 차이가 35.22%에 달했다.
하지만 합병한 삼표산업에서 정대현 부회장 측 지분은 16.82%, 정도원 회장은 33.15%로 격차가 16.33%로 줄었다. 삼표그룹에 대한 정대현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된 결과를 낳았다.
삼표그룹 측은 “새로운 성장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시장은 이를 ‘승계 작업’으로 분석했다.
◇실적 준수한 삼표, 법률 리스크가 최대 난관
삼표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끝낸 뒤 당시 정대현 삼표그룹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5년 삼표에 입사했다. 삼표기초소재 마케팅 지원담당, 삼표시멘트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삼표레일웨이 대표, 삼표시멘트 대표 등을 거치며 그룹 업무를 익혔다.
정대현 부회장은 본인이 보유한 지분 5.22%와 에스피네이처의 18.23%를 합해 삼표산업을 지배, 2대 주주에 올라있다. 현재 부친이자 최대주주인 정도원 회장이 지분 30.3%로 삼표시멘트를 비롯해 삼표, 삼표피앤씨, 엔알씨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삼표산업은 의결권이 없는 자기주식이 44.7%에 달해 총수와 2세만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실적은 준수한 편이다. 삼표산업은 지난해 매출 약 1조5960억원으로 2023년(약 1조6620억원)보다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약 1170억원으로 전년 대비 1억9000만원가량 늘었다. 경쟁사인 유진기업은 연결 기준 매출이 지난해 1조3933억원으로, 2023년 1조4734억원에 비해 5.4% 감소하는 사이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삼표산업은 지난해 기준 삼표시멘트 및 종속기업 75%(약 7907억원), 삼표피앤씨 13%(약 1370억원), 삼표레일웨이 9.57%(1008억원) 등으로 삼표시멘트가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걸림돌은 법률 리스크다.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만큼 향후 행정·형사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법정 공방이 벌어지면 진행 중인 승계 작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공정위 제재는 단순한 행정처분을 넘어 검찰 수사와 처벌 등 법적 책임으로 확대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건이 마무리되려면 최소 2년 이상이 소요돼 재판이 끝날 때까지 승계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부당 지원 혐의가 법원에서 인정될 경우 향후 승계 작업에도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